고향의 봄
-어떡해요?
-뭘?
-내일이면 배꽃이 다 질 텐데...
그러고는 사진 한 장 보내왔다.
  
한국 배꽃하고는 달라서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제” 같은 감흥은 없지만
{그거야 총기가 편의품인 나라에서는 한(恨)이라는 게 없으니까}
부푸는 것으로는 솜사탕을 떠올렸던가, 그만큼 잔뜩 바람들어간 꿈처럼
잡지 못하고 보내버린 구름처럼
Bradford Pear가 필 때는 굉장치도 않은데
아~ 꿈은 사라지고~ 갈 때는 참 허망하더라.
아해들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면서 올라가지 않고
“의료보험 없는 당신은 안 돼요” 그랬지만 누구라도 올라가서 자르긴 해야지
그렇게 해마다 가지치기했지만
지난겨울에 그대로 두었으니 지붕을 덮었으리라.
그보다는 작지만 ‘신세기’니 ‘20세기’니 하는 배나무들도 있어.
새들 때문에 사람 차례가 돌아오도록 열매가 남은 적은 없지만.
                    
   ![7031303[1].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659_2007-03-13/7031303%5B1%5D.jpg)
고향은
집이 있는 데
집 없는 사람은
고향도 없는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히 11:16)
집 없으면 서러움이고
집 있으면 서글픔이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요 7:52)

아득해도 못 갈 데는 아니고
강이 있으니까 건너가야 할 게고
얼음 풀리면 배 띄우고
결빙기에는 섶다리가 있으니까
                               
거리라는 게 필요하기도 해서
내 곁에
있을 때는 그저 잎이더니
내 곁에서
떨어지니 곱디고운 단풍이었다
사랑 때문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本色은 멀어지는 것이 거리다
멀어지면 질수록
原色으로 다가오는 것이 거리다
-강동주, ‘사랑 때문에’-
우린 그러니까 지금
본색을 드러내는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