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어떡해요?
-뭘?
-내일이면 배꽃이 다 질 텐데...
그러고는 사진 한 장 보내왔다.
한국 배꽃하고는 달라서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제” 같은 감흥은 없지만
{그거야 총기가 편의품인 나라에서는 한(恨)이라는 게 없으니까}
부푸는 것으로는 솜사탕을 떠올렸던가, 그만큼 잔뜩 바람들어간 꿈처럼
잡지 못하고 보내버린 구름처럼
Bradford Pear가 필 때는 굉장치도 않은데
아~ 꿈은 사라지고~ 갈 때는 참 허망하더라.
아해들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면서 올라가지 않고
“의료보험 없는 당신은 안 돼요” 그랬지만 누구라도 올라가서 자르긴 해야지
그렇게 해마다 가지치기했지만
지난겨울에 그대로 두었으니 지붕을 덮었으리라.
그보다는 작지만 ‘신세기’니 ‘20세기’니 하는 배나무들도 있어.
새들 때문에 사람 차례가 돌아오도록 열매가 남은 적은 없지만.
고향은
집이 있는 데
집 없는 사람은
고향도 없는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히 11:16)
집 없으면 서러움이고
집 있으면 서글픔이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요 7:52)
아득해도 못 갈 데는 아니고
강이 있으니까 건너가야 할 게고
얼음 풀리면 배 띄우고
결빙기에는 섶다리가 있으니까
거리라는 게 필요하기도 해서
내 곁에
있을 때는 그저 잎이더니
내 곁에서
떨어지니 곱디고운 단풍이었다
사랑 때문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本色은 멀어지는 것이 거리다
멀어지면 질수록
原色으로 다가오는 것이 거리다
-강동주, ‘사랑 때문에’-
우린 그러니까 지금
본색을 드러내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