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짐 3
UCC에 ‘냄새’까지 포함시키면 좋겠지만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것 같아.
가방에 양은도시락 넣고 다니던 시절에...
그쯤이면 다 알겠지?
김치 국물이나 졸인 어묵{가마보꼬를 뎀뿌라라고 불렀지}에서 흐른 것들이 책에 뱄잖아?
마른 다음에도 얼룩과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지.
번짐은 제 땅이 아닌 데로 슬며시 기어들어가는 것이라고.
침투를 일부러 숨기려는 것은 아니니까 잠입이랄 것도 없고
그저 스밈이라고 해두자.
그렇게 스며들면...
그때 한 얘긴데
번짐이 뭐냐 하면-
번짐은 엷어짐이야.
그러다가 없어짐이야.
그냥 없어지는 건 아니고
스며들고 만나 어울려서
새로 태어남이야.
제 빛을 세우며
자기를 지키겠다면
사랑은 정말 어렵겠다.
그럼, 퍼짐이고말고.
보이지도 않고
있다가도 사라지지만
알 만한 이는 알더라
그렇게 끼침을.
그러니까 유곡(幽谷)의 난초라도
서럽지 않겠네.
번짐은 다가옴(薄)이기도 하지.
박모(薄暮), 박명(薄明)이라고
살며시 깨금발로 다가오는 기세.
딱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는 때.
빛인지 어둠인지
삶인지 죽음인지.
다 빠져버리고 바래고 사위고 흩어졌으니
슬플 것 같은데
그냥 참는
아니 뭐 괜찮은
그런 번짐.
또 그러기도 했다.
번짐은 내 가진 것 조금씩 놓아줘서
네게다 조금씩 스며들게 하고
그래서 나는 빈혈이 되고
그러면 너는 기운 차리고
그렇게 네가 산다면
살아서 할 일 한 것 같아 기쁘고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어라.
흘린 것을 되돌려 받겠다고 한 적 없는데
머금었다가 익은 걸로 베푸는구나.
역삼투압으로 스며드는 흐름이 황홀하네.
적시지 않아도 늘 젖어
그렁그렁 똑똑... 하지 않아도
우린 알지 번짐 전에
흐름과 스밈이 있었던 걸.
이제 와서 얘긴데-
번짐은 그만하면 됐어.
스밈이 없고서야 머묾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빛깔을 골라 화폭에 남기자면
덕지덕지 이겨 붙일 게 아니고
{그랬다가는 페인트 켜를 걷어내면 그뿐이니까}
굳이 프레스코나 색유리{필름 입힌 것 말고} 아니더라도
속으로 배어든 게 있어야 할 거야.
그래도 이제는 번짐이 얽힘 같아서 싫어졌어.
발묵(潑墨), 파묵(破墨), 적묵(積墨), 복파(復破), 선염(渲染), 찰염(擦染)...
다 일없고
갈필(渴筆) 한 번에 덧칠 없이 지나가기로.
{안 되면 찢어발기지 뭐}
하하 벤또 국물로 얘기가 시작됐던가?
말랐어도 얼룩과 냄새는 남더란 말이지?
어쩌란 말인가 버릴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