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없어, 시작은 언제나 ‘새로’이니까.
그와 시작할 것도 아냐, 그나 나나 그때 그렇게 남아있지는 않으니까.
알만한 사람 만나 반갑더라도 친숙함은 내려놓게, 시작하려거든.
‘당신’은 흔적을 돌아보며 부를 이름이 아니고 이제부터 만들어갈 님의 호칭일세.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말이지
그게 못 잊겠다는 말도 아니고
그러다가도 잊게 되었다는 말도 아니고
그때 그 사람을 향한 그때 그 마음은 아니라는 얘기니까
시작하든지 말든지.
산빛은 수심을 재지 않고
강물에 내려앉는다.
강물은 천년을 흘러도
산빛을 지우지 못한다.
일테면
널 잊는 일이 그럴까,
지워지지 않는다.
-김현, ‘산빛’-
“지워지지 않는다”니 껄껄 웃었네.
물빛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내려앉아 파랗고 산이 드러누우니까 풀빛이겠는데
스며 나와 넘침이 없는 산이라면 애초에 푸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청산 있는 한 녹수가 있을 터이다.
산 그림자 드리웠어도 흐름은 한번 핥고 제 길 가더니
뭘 지우지 못한다는 거냐 가버리고나서.
‘다시’는 아닌 줄이나 알고
시작하려거든 해봐.
봄엔 다 그런가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