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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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의 Gestalt에서 ‘어제’는 늘 모호하고, 그래서 미화되기가 쉽다.


 

무고한 인명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약탈과 방화도 드물지 않았을 것이고.

{그거야 토벌군경 쪽에서도 덜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랑은... 발정기에 꼭 흘레해야 하는 짐승처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념은... 무엇인가 고귀한 것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그것을 위하여 투쟁한다는,

그래서 한계상황의 실존에게 위엄을 부과하려는 눈물겨운 자기기만의 포장지였다.

망실공비, 조선노동당 유격대, 남부군, 그리고 ‘역사 바로 잡기’가 왜곡할 다른 이름들,

어떻게 불려지든지 그들은 사라진 존재이다. {사라졌으면 ‘존재’가 아니지 뭐.}

기억한다고?  가능하다고 치고, 재구성한 새 존재는 그때 그들은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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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상기하자 000’ 라는 표어들, 뭘 어떻게 기억하자는 건지?


가장 멍청한 슬로건은 캐나다 퀘벡 주 자동차 번호판에 써넣는 ‘Je me souviens’이다.

분리주의자인 Parti Quebecois가 집권하자 ‘La Belle Province’를 그렇게 바꿨던 것.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 

퀘벡 주민들에게 물어보라, 뭘 기억하냐고?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정치인에게 물어보라,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럴 듯하게 일치하는 통계적 진리도 없다.

{뭘 모르는 정치인에게도 사숙하는 사학자가 있어서 저도 모르는 꼬인 리론을 들고 나오는 이들도 있다.  아휴 피곤해~}

그런 모호한 표어가 유지체제(operating system)의 명령어로 아직도 사용되다니.

{평양 거리에 써 붙인 “선군 정치로 혁명 수뇌부를 옹위하자”는 상대적으로 더 선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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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나 문화적 집단이 “잊지 말자”라는 구호를 내거는 건

무슨 노림수가 있으니까 꼼수로 채택한 것이라 치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날 잊지 말아다오”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 간절한 바람(哀願)을 비웃자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나는 죽지만, 우리 헤어지지만, 잊지는 말아다오?

될 법한 얘기냐고?

어떻게 기억해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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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네 살이 되기도 전 아이의 눈에도 그는 코흘리개로 보였다.

소년 인민군이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김일성 장군가’를 가르쳤다.

그의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군복, 그리고 가사의 일부가 떠오르지만 그저 그것뿐,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면 길들여졌던 사람들, 관계가 이루어졌던 사이{흠, ‘Le Petit Prince’에서}

잊혀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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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 없었던 순간들은 잃은 것이야.

잃어버린 것은 잊혀지게 돼.

잊혀져서 잃은 게 아니고

잃었기에 잊혀진 거라고.


{전설은

아닌 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을

그런 줄로 여기고 덮어두자는 얘기.

물망초의 전설은 그런 것들 중에서는 촌스러운,

하 황당하도록 촌스러우면 애절함이 배어들어

더욱 촌스러워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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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해 주어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 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나야 언제나 못 잊는 꽃 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이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랑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 배 같던 것


     당신이 간 후

     바람곁에 내버린 꽃빛 연보라는

     못 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김남조, ‘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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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그렇다고 치고 김춘수 님은 왜...}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도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김춘수, ‘물망초’-


{그분이라고 인상 쓰며 갸우뚱거릴 시만 쓰신 게 아니구나.

점입가경이라서...}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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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림은...” 그런 말 있지?

                                             더 희미한 것, 상대적으로 보다 뚜렷한 것, 초점과 삽질 효과에 따라...



푸른 장미.

빨강, 노랑, 분홍, 하양, 보라, 주황, 뭐라 부를 이름도 없는 색조의 많은 장미가 있지만

파랑 장미 없다는 사실이 약 올라서

수없는 실험과 노력을 기울였어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어디 그럼 내가 한번...”으로 나섰다가 번번이 실패하고는

“신 포도는 안 먹어”라고 주절거리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Spray paint는 사용하지 말라 이거야.

저 ‘말짱 황’ 사건이 언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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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친 고기가 커 보이고

아쉬움에 “이따만한 놈...”하면서 내미는 팔 길이가 점점 길어지듯이

가버린 사랑, 이제는 사랑도 아닌 것이

아름답고, 숭고하고, 위대한 듯이 점점 커지는 것은

속이자는 게 아니지만

속고 있는 거라고.


{Carpe Diem!

날마다 기록을 갱신할 것도 아니고

먹을 만하면 잡아 올리되

잔챙이를 다 끌어 모을 것은 아니지?

그리고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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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렸다고

있던 자리에 흔적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걸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마지막에 이르러 한 번 더 말하지만 잊지 못해서는 아니라니까}

이름 지어 ‘물망초’가 된 거라고.

 


                                                   장미를 장미 아닌 이름으로 부른들{What's in a name...}... 뭐 그런 것처럼,

                                                                                                                그렇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Wisteria(등꽃)보다는 ‘Blauweregen(푸른 비)’가 듣기 좋고

                                                                                                               ‘푸른 눈물’이라 그러면 더 좋겠네.

                                                                                                                                        {그런 게 없더라도.}

                                                                                                                                   옛날은 가고 없어도

                                                                                                         다시 빚자면 예쁘게 만드는 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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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Ti Scordar Di Me’ (Ferruccio Tagliav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