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렸는지 잃었는지
아침에 급하게 뛰어내릴 일이 생기는 바람에 공책 한 권을 두고 내렸다.
토마스 칼라일의 ‘불란서혁명사’ 원고 같지는 않더라도
이년 동안 모아둔 메모 장인데...
처음에는 돼먹지 않은 단상들 보물이나 되는 듯이 간직하던 꼴이 우스워
“에이 잘 됐다” 그랬는데
몇 시간 지나고나니
사랑을 떠나보낸 것 같고
무슨 금단현상이랄까 마음잡을 수 없다.
“내 맘에 남모를 공허 있네”가 아니라
오리 떼 소리가 난다.
눈 뜨고 사기 당하듯
떠내려가는 사람 건지지 못하듯
그런 적 여러 번이었는데도
그냥 잃은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빗물이겠지~ 하다가
조용해지면 은비늘 반짝이는 조요한 흐름으로 돌아가려나...
벚꽃 지면 라일락이 뒤를 잇지만
꽃 있다고 봄이 머무는 건 아니고
봄 아니어도 꽃은 남는다.
{있잖아, 작약, 수국... 그렇게 되면 여름이라고.}
가지도 않은 봄 빨리 떠나라고 눈치 주는 것 같다만
다들 그러더라, 잡고 싶지만 안 되는 건 차라리 미워하더라.
{그래도 뻔하게 와르르 무너질 튤립, 책상 위에까지 들여다 놓는다.
있을 때까지는 있으라고.}
거기에 좋다는 시들 많이 모아 두었더랬다.
시(屎)로 여기고 내다버린 셈 치자.
괜찮은 시(矢)라면 가슴에 꽂혔을 것이다.
그러면 마음에 모시고(侍) 살게 될 것이다.
{“그리운 우리 임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있어요.”}
좋다 여기면서도 시새움(猜)을 주체하지 못해서 없애버리기로(弑) 한 것이니
이제는 주검(屍)이 되었으나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시(諡)를 얻게 되리라.
그렇게 남은 시(詩)는 말씀(言)의 사원(寺)에 모셔지고
그런 것들이 많을 수야 있나, 절창은 둘만이라도 시시해진다.
이렇게 초혼제 치렀다 여기자.
아버님 말씀: “잊지 못하는 건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