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다기에

 

1

 

보도에 널린 낙화를 피하여 디딜 수는 없겠지만

안쓰럽다는 느낌도 없나봐 저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짓밟고 다니잖아.

{웅덩이에 뜬 개구리밥이나 예식장의 confetti 정도로 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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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합을 깨고 단번에 쏟아 붓지 않았더라면

몇 방울씩 흘렸더라면

오래 갔겠다, 하루 아니고 한 달 아니고 일년 아니고.

{‘영원’이라는 단어는 피해야겠지만.}

 

아깝다던 유다는 (닥상) 욕만 얻어먹고

스승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는데

아깝다는 그 느낌 나도 공감이라서

흩어지는 향기를 잡으려고 팔 벌리고 손 내젓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천지에 진동하다가 씻은 듯 사라지면 어떡하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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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웬 비는 내리어...

 

     아마, 거기가 눈잣나무 숲이었지

     비가, 연한 녹색의 비가 눈잣나무에 내렸어

     아니, 눈잣나무가 비에게 내려도 좋다는 것 같았어

     그래, 눈잣나무 몸피를 부드럽게 부드럽게 씻겨주는 것 같았어

     아마, 병든 아내의 등을 밀던 내 손길도 그랬었지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그저, 가벼히 껴안는 것처럼 눈잣나무에 내리는 비

     그리, 자늑자늑 젖어드는 평화

     아마, 눈잣나무도 어디 아픈 거야

     문득, 지금은 곁에 없는 병든 아내가

     혼자, 눈잣나무 되어 비를 맞는 것으로 보였어

     그만, 나도 비에 젖으며 그렇게

     그냥, 가벼히 떨리는 듯한 눈잣나무에 기대고 있었어

 

      ―박제천, ‘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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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눈잣나무 숲도 아니고

황사, 비, 바람, 그러니까 악재가 겹친 셈인데

물빛 비로소 정이 가누나.

하늘을 담아 시리도록 새파란 것도 아니고

뛰어들기엔 너무 미안하도록 투명하지도 않고

부끄러운 삶 숨기기에 넉넉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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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할 수만은 없고

조금만 색깔을 집어넣은

수묵담채 같은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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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구라도-생명이라면 다 그렇겠지- 피자고 할 것이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아름다움을 활짝 펼쳐 보이자고.

꽃망울도 그렇고

가슴이 봉곳하지도 않은 소녀조차.

 

피면?

마음으로야 오래 가고 싶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안 되지,

풀은 마르고 꽃은 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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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 길래 진달래

지는데 보람 뒀나

피고 나면 진다네.

 

진달래가 안 지면 어떡하니?

필 때 울더라도 질 땐 함빡 웃음

우는 듯 웃는 얼굴

니승의 염불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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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동요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지게에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호랑나비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따라갑니다.

     아지랑이 속으로 호랑나비가 지게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간다.

지는 꽃 지고 가는

할아버지 지게에 얹혀.

고개 너머

동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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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 속에 던질 풀도 고이 입히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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