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매화 필 때
매화 필 때에 만나지 못했다.
잘 있으려니 하며 안부 묻지 않았다.
마음이 있다면 도중에 냄새로라도 어울릴 줄 알았다.
정당매 남명매
가까이 있는 줄 알면서도
가보지 못한다
우듬지 잘리지 않았으면
발돋움하고 볼 수 있을까
늙었다고 기운 사라진 건 아니어서
백가지 향내 섞였어도
그대가 보내는 줄 안다
해 저물면 중간에서 어울리자고
그렇게 안 됐고...
벚꽃 필 때
그렇게 안 됐고...
노래 부르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가라오케에서는 선곡하지도 않은 게 흘러나와
한 무리의 구름이 펑! 하고 튀겨진다
공중으로 팝콘 같은 꽃잎들 날아 내린다
벚꽃나무 아래로
꽃잎 무더기 위로
발을 내딛는다
사뿐사뿐 날아 내린 꽃잎들
내 눈의 샘물 위에 꽃잎 뜬다
몸 속 골짜기마다 꽃잎 떠 흐른다
한 생애 이렇듯 꽃잎 띄우고 지나는 때 있다
부서진 꿈의 뼛조각들, 깎인 모서리들
동글동글 띄운 채
내딛는 발걸음들
가장 가벼운 때 있다
―이나명, ‘벚꽃나무 아래’-
하늘을 우러를 용기가 없어서도 아닌데
떨어진 꽃잎만 봤다.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로 내버려두기엔 미안해서
“다비식이라도?” 그랬다.
양념안한 고기 타는 냄새를 견딜 이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풍장이면 되겠다고 그런다.
제 길 제가 찾아가는데
유기나 방치의 죄목으로 기소하지는 않을 거라고 해서
떠나는 것들 내버려뒀다.
{Coco의 ‘風化風葬’ 듣고 싶은 사람은 듣고
김광석의 ‘꽃’이 낫거든 입맛대로 고르고.}
배꽃은 눈처럼 나비처럼
문 닫아 걸고 울기는?
{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林白湖, ‘閨怨詩’-}
어제는 그랬고 오늘은?
{冷香鎖盡晩風吹 帳帳無言對落暉 舊日郭西千樹雪 今隨蝴軟作團飛 -蘇軾, ‘梨花’-}
{漢書는 폼으로 남긴 그림이니까 신경 쓰지 마셔요.}
{갈 데 없었지만 아파트 놀이터에도 배나무 한 그루 있어서...}
오늘은 비 오길래
이런 날은 뽀글파마 아줌마랑 손잡고
{아니다, 우산을 받쳐야 하니까 한 손으로는 어깨를 감싸야하거든.}
탑돌이를 하든지 돌담 따라 걸으면 좋겠다.
젖지 않으면 아프다.
아프면 안 하는 게 낫고.
친구에게
꽃 예뻐하는 건 흉이 아니라고.
도량에 백화가 그치지 않고 피는 이유?
잡화엄식(雜華嚴飾)이라고 그러잖아?
우린 그런 걸 너무 모르고 살았어
황사 일으키는 광야에서 사십일쯤 지내야 되는 줄 알고...
꽃 사태 속에서도 꽃이 어디 있냐는 사람도 있더라.
진다고 아주 간 건 아니더라. 또 피더라.
정작 아름다운 건 '해체'이더라.
그 눈부신 '멸(滅)'이 해탈 아닌가...
내가 보지 못해도
저만치 홀로 피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