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백 번 고쳐 죽어


이삿짐 챙긴다고 쌓인 종이 내다버리다가

구겨진 메모 쪼가리 찢기 전에 몇 자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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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알던 사람이 처음 보며 그랬다.

“키가 큰 줄 알았는데...”

40여년 만에 만난 동창생도 그랬다.

“예전엔 너 컸잖아?”


갑자기 줄어든 게 아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런 왜소화는 병도 아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그렇지 않은가 싶다. 

키도, 뇌세포도, 마음의 용량도, 영향력도.


줄어든 게 아니고

줄여가는 것.

다 줄여 만삭공(滿朔空)으로 비움.


없는 듯이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되다가

없음으로 놓여남.


쉽지만 잘 안 되는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는

하다보니 해낸

잘 안 빠졌지만 나오기는 한.


올 때 갈 줄 알고

갈 때 올 수 있음도 기대하고

서운함으로 돌이키지 말고

헤어진다고 원망 말고.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제 와서 변명 같아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래도 저래도 지난 거지만

좋았다고만 생각하고 싶어요.


그때 좋았어, 거기 좋았어 라는 생각 들거든

지금 여기도 좋은 줄이나 알아요.


얽매이지 않겠다고 그러면 얽매어있는 상태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얽매임이 되어

치사하게 목을 조일 때

그냥 받아들이세요.


어떻게 구덩이를 파서 한 인생을 묻겠어요

몸은 처리해야 하니까 그러는 거지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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