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하(晩霞)
그림자가 길어지길래 고개 돌려 보니 해가 기울었다.
거기 있는지 확인하자는 게 아니고
그림자도 빛 때문에 생긴 것이니 감사를 담아 한번 쳐다봤다.
雨後靑山半帶嵐
그리움의 안개는 퍼져가면서 엷어지고 옅어져야 하는데
워낙 지천으로 쏟아내니까 가는 내내 시계 제로이다.
맑은 날이라면 고개 너머 또 고개 넘는 동안 아름답다는 느낌도 있었으련만
거긴 그렇게 늘 운무로 젖어 지나는 덴 줄 알고 아쉬움도 없다.
날 잊지 말아라 부탁할 권리 없고
그대 잊지 않으리 다짐할 이유 없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그게 무슨 게송(偈頌)쯤 되는 듯이 풀기도 하더라만
그냥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내 속을 태우는구려”로 따라 부르면 되겠구먼.
기다리기로 하면 더 힘들어지니까
혼자 살 것이라면 기다림이 없어야 돼.
사립 닫아걸고 나서 바람소리에 마음 쓴다면
산거 택한 이유가 우스워지네.
너는 왜 시를 쓰지 않느냐고 그래서
내가 왜 시를 쓰느냐고 그랬다.
좋은 노래 널렸는데, 그것들 반의 반의 반도 불러보지 못하고 갈 텐데
뭘 또 짓느냐고 그랬다.
반은 시 같고 반은 그림 같고 시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데 살면서
그리겠거든 물에 그리고
쓰겠거든 오동잎에나 끼적일 것이다.
暮江煙浪沒平沙...
扁舟一葉繫村南
머리가 깨꽃 밭 되도록
가증한 언어폭력,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저지른 무차별 총격
용서받고 잊어버리기를 바란다만.
안개 냄새 비릿함을 몽혼제인 듯 들이마시고
이슬 머금고도 힘겹다고 처진 복사꽃 털어주다가
휘저어도 흩어지지 않고 쌓인 데 또 내리는 어둠 속으로
가던 길 같아서 그냥 들어간다.
日日看山看不足 時時聽水聽無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