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로동자의 날’은 노동 치는 날

휴일을 이용하여 짐 싸고 내일 이사 간다.

 

명품 족보에 든 비싸고 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이 난인데

난분(蘭盆) 몇 개 남은 걸 다 내다버리라고 그러신다.

무소유를 실천하셔서도 아니고 그런 걸 통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뭐 나는 자유도 권리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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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마음 쓸 이유가 없다.

기르지 말자, 지니지 말자, 버릴 것을 모으지 말자.

 

그러니 화분 들여다 놓지 말고 살자.

꽃밭도 따로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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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만나거든 잠깐, 아주 잠깐만 쪼그리고 가까이서 바라보자.

“아 예뻐라” 해주고 가던 길 가자.

두고 가기 그렇거든, 발걸음 떼는 게 힘들거든

한번만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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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고 다 내 것 삼을 수 없거든.

{챙기기가 엔간히 어려워야 말이지.}

예쁘니까 모두의 것이라야.

하늘이 모두를 품는 것은 하늘이 모두의 것이니까.

 

     들꽃 언덕에서 깨달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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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친구로, 애인으로 지내며, 임이라 부르는 정인 있다고 치고

너의 산만함이나 나의 냉정함을 서로 공격하지 말자.

바람받이에 피어 바람이 쓰다듬고 가버렸는데

거기 그냥 있었던 게 무슨 죄라고 바람둥이라고 그러냐.

 

바람이라도 그렇다.

꽃샘바람이니 그러지만, 바람 탓할 것 없다.

 

{鼓舞風所職 被物無私阿 惜花若停風 其奈生長何  花開雖可賞 花落亦何嗟 開落摠自然  -李奎報, ‘妬花’-}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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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앞차의 taillight만 좇아가는 게 아니고

고개 돌리지는 않지만 백미러(side mirror)를 힐끗거린다는 얘기.

누구라도 앞을 보며 가지만

뒤를 전혀 안보며 갈 수는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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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인사 나누지 않고 지나친 것들

내 마음 나도 몰라 어정쩡하니 헤어진 이들

쬐꼼 보고 싶다고 해도

그게 한심한 퇴행은 아니거든.

 

     옹달샘 마주앉아 외태머리 땋을 적에

     밭 매던 앞집 오빠 휘파람 부는 뜻을

     바람은 알았다 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물동이 이고 사뿐 울타리 건널 적에

     꼴망태 지고 성큼 뒤따라오는 뜻을

     냇물은 알았다 해도 전 정말 몰랐어요

 

      -김동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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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내(牛川)에 안개 끼면 나무 실루엣 몇 개 보일락 말락 했더랬다.

선명하지 않은 것은 아무 때라도 거기 남아있으니까

오늘 실체를 보고야 말리라 그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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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오월은 배고픈 때이기도 했다.

익지 않은 보리 베어...

{田家少婦無野食 雨中刈麥草間歸 生薪帶濕烟不起 入門女兒啼牽衣 -李達, ‘田家行’-}

아니면...  감꽃?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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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싸다가 이 무슨 짓...

짐 정리하고 여행 다녀오고 그러면 오월 그렇게 가겠고...

문 닫아걸 건 아니지만 사람 없는 집에 찾아오지 마셔요.

오월이면 온 골짜기에 송화가루 날릴 텐데

{황사라 하지는 않겠어요.}

그런 날 왔다가 쓸지 않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리지 마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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