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메모 2 몇 바퀴 돌고 온 아침에

 

 

욕실 메모?

작가의 창작노트도 아니고 뭐라고 그런 게 필요한고?

그 왜 번뜻 스치는, 만화에 전깃불로 표현되던 good idea, 지나가면 잊어버리는 것 있지?

놓치기 전에 적어두어야 하는데 적바림할 종이는 뭐 거기 휴지가 있지만

펜? 絶命詩도 아닌데 손가락 깨물어 血書로 남길 것도 아니고 해서

기억해두자 그러고 샤워하는 동안에 전깃불 꺼지고 건질 건 사라지더라고.

나중에 想起했다? 보통 피식~으로 끝나더라고. 개꿈처럼.

 

그렇다고 영 무시할 것도 아닌 게

Descartes의 그 유명한 “Je pense, donc je suis”라는 명제나 Wittgenstein의 ‘Tractatus’ 같은 명저도

참호 속에서 내지는 병영생활 틈틈이 적어둔 aphorism인 셈이니까.

 

{이제 와서 오래된 변명 되풀이하는데, 아 난 긴 논문 쓰기 싫어서 학교공부 집어치웠다.

Die Kirchliche Dogmatik? 열댓 권 넘도록 쓸 게 있냐고?

“絶對他者? 내가 기여.” 딱 한 줄로 반박했더니 점수 안 주더라.

Das Prinzip Hoffunung? 뭐라고 세 권씩이나...

두 줄, “절망하도록 희망하라,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로 정리하자고.

이건 뭐 corny joke이니까, 억지웃음 짓고 그냥 지나가기로.}

 

 

 

자기개발 강좌, 저술, 설교 등으로 밥벌이하는 꾼들에게 야단맞겠지만...

목적이 없는 건 아니나 나는 보통 목표(량)를 정하지 않는다.

활을 잘 쏜다는 건 명중률이 높다는 것이겠네.

그러자면 과녁을 향하여 쏘는 연습을 반복해야 하는데

과녁을 정해놓지 않고 날린 화살이 떨어진 지점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우와 난 백발백중~” 그러면 웃기는 얘기 아냐?

그래도 난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를 부르며 즐겁다.

 

곧은 바늘로 낚시질 하겠다? 고기를 잡겠다는 게 아니라면 뭐 하러?

고기 잡는 건 어부의 생업인데 왜 내가? 손맛 어쩌고 하며 생명을 낚아채는 게 樂?

 

 

혼자 달리기에서 일등하고 둘이 달리는 경주에서 이등 하는 나는

동네에는 겨룰 상대가 없다고 심심해한다.

본선 진출? 일없다.

나는 혼자서 대운동회, 새파란 하늘 아래 만국기 펄럭이는 오늘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강호를 주유하며 高手를 찾아 比武를 벌인다 해도

일부러 질 것도 아니고 이겼다 한들 남에게 패배감만 심어줄 것을.

관두자.}

 

 

처음부터 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항상 초과달성! 보통은 10% 정도, 그렇게 더해진 것에 또 10%쯤 더.

그러니까 애초에 목표치를 너무 낮게 책정했던 거지.

이것저것 따져본 게 아니니까 策定도 아니었지.

이런 식...

오늘 아침엔 200칼로리쯤 소모할까? 200 Cal이야 금방이니까.

그러고는 “가만있자 나오기 전에 먹은 요구르트! 상쇄하면 꽝이잖아, 배둘레햄은 언제 빼고?”

두 바퀴 더 돌고 나서, 음, 토스트 한 쪽도 지운 셈인데...

300칼로리, 조금 더 가도 될 것 같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그 왜 고릿적에는 데이트하고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잖니?

그러면 버스정거장까지 바래다준다고 돌아서네? “아니, 어둔 골목길을 혼자?” 해서 다시 집까지.}

제가 살 빼고 컨디션 조절한다며 걷는 사람이 누구를 위하기는?

그래도 교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근데 뭐가?- 그러듯이 “00를 위하여!”라고 외치면

情人에게 무슨 선물이나 주는 것처럼 우쭐해져서 힘든 것 참을 만하더라고.

그래 10%만 더, 그러면 330 Cal, 거기다가 10% 더? 해보지 뭐... 해서 363 Cal.

한 번 더? 까짓 거, 그렇게 400 Cal 정도.

왜 처음부터 400 Cal 소모하기로 목표치를 정하지 않았냐고?

“어휴 그걸 언제...” 보다는 고비마다 “아 난 넘어설 수 있다니까, 더 나아갈 수 있다니까”가 더 기분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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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를 달았다든지 하는 ‘우리 편’ 선수가 마라톤 마치고 인터뷰에 응할 때 말이야

가쁜 숨 아직 고르게 되지 않았다 해도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면 좀 그렇더라고.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구나. 결승선을 통과하고는 기진맥진하여 실신한다든지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싶어.

죽을 힘(?) 다해서 뛰었다면 일단 죽은 자와 방불해야!

 

인생은 마라톤이다~ 뭐 그런 말들 하는데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이니 그에 맞는 기획과 전략으로 대비, 기획, 경영해야 한다는 뜻인 줄 알지만...

뛰긴 왜 뛰어?

난 시간을 타고 여행한 것뿐이다.

좋더라.

 

뛰지 않아 기운이 남았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

저물기 전 한 시간이나 남았을까, “거기 아직 기운 있는 사람 이리 와봐. 하루치로 쳐줄게.”

그렇게 부르는 소리 있을지.

 

아람치가 이만큼인 게 넉넉하게 쳐주신 덧두리 때문이니까

“이제껏 내가 산 것도~”라는 생각에 미처 찡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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