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落花流水)
한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아 송죽대절(松竹大節)이라 불러주던 사람들이
봄철에 꽃그늘 찾는다고 도리(桃李)를 시새울 것 없다.
받을 만큼 받았으니까.
삼동을 견딘 사람들이 꽃으로 다가오는 봄소식이 반가워서
매화와 벚꽃에 환호하지만
걔네들 가고 나서도 꽃은 얼마든지 있다.
차례가 늦어서 그렇지 더 예쁜 애들이던데.
오고감, 피고 짐에 뭐 그리 마음 쓰냐는 얘기.
갑자기 터지고 벌어지는 게 아니고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만큼의 기운으로
고이기도 하고 치솟기도 하면서
준비할 만큼 하고서
조금씩 문 열더라고.
개화는 그런 것
소 뜨물 켜듯 한번에 욕심낼 일이 아니지.
개화가 그렇듯이 낙화도 그렇더라.
매몰차게 뿌리치며 간듯해도
머물 만큼 머물면서
차릴 만큼 인사 챙겼으니까.
사연이 없는 이 어디 있겠으며
오늘 들어도 내일 잊어버릴 이야기들인데
하늘이 눈감고 모른 척한 중생의 하소연을
내가 들어줬다고 어쩌겠냐만
떨어진 것에 귀 기울인다고 나도 눕고
달려 있는 것과 눈높이로 얘기한다고 기대섰다.
이름 없어 무명이라도 무명씨(無名氏)로 부를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부분)-
가만,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무엇이 되는 것일까?
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었다고?
이름으로 가두어 동작을 상태로 파악하자는 얘긴지...
{그게 무슨 좋은 시라고?}
추사까지 들먹일 필요 없고
그 왜 산곡도인(山谷道人)의 그리기 쉬운 글자로 적은 노래
‘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는
“내버려두니 제대로 굴러 가는구나, 좋구나” 그런 얘기 아니었던가?
최북, ‘草屋山水’
김홍도, ‘水流花開’
에휴, 시인들...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편지 3’ (부분)-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다?
어떻게 알고...
흔적 없는 바람이나 구름으로
나 그대 곁에 오래 머물고 싶다.
-강남주, ;떠도는 자의 일기‘ (부분)-
그건 머무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흔적이 없지.
당신들 마음을 모를 건 아니지만
내 바람도 별로 다를 바 없지만
에휴, 시인들
예쁘게 가꾸기는 하지만
말이 되어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