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에서 1

 

이사해서 불편한 게 많지만

{왜 이런 데로 와서...}

뒷산에 한번 올라가고 나니 마음이 풀린다.

뒷동산, 그거 참 오랜만이다.

 

들어와서 보니까 제법 크고 넓다.

경로당에 가기는 뭣한 중늙은이들이 파마머리에 서캐 깔리듯 퍼져있지만

새순 빛깔, 들꽃, 풀과 수액 냄새들로 상쾌해진 기분을 많이 빼앗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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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것도 아니지만

{그러니 나도 모르지}

뽐낼만한 아름다움도 없지만

들여다보니 곱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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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예쁘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좀 알아주기 바란다.

 

그러고 또 걷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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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사랑하지 않는 듯해야

사랑일 것 같아.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진저리나도록 거리를 좁히겠다는 사람들은

사랑하지도 않고 얻지도 못한다고.

 

     제가 사랑하는 자는

     지극히 아름다우며 귀한 자이오니

     그가 가는 길에

     저로 하여 덫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 ...)

     제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가

     빛나고 밝은 길, 아름다운 길을 가는 것을

     저는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축복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바랄 따름이오니(... ...)

 

      -나태주,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60’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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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걷다보면 보고 싶어지지만

그렇다고 되돌아갈 건 아니다.

또 만나게 될 것 같아.

 

     보고 싶었다,

     너를 보고 싶었다는 말이

     입에 차고 나면 문득

     너는 나무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지나는 길목에서

     풀잎 되어 햇빛 되어 나를 기다린다.

 

      -나태주,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72’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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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에서 줌마 부대 떼거리와 마주쳤으니

내가 길섶으로 비켜섰다.

느끼한 눈길 받기에는 한참 지난 늙은이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들 참...

불치의 저급한 호기심이리라.

 

광유(匡裕)가 먼저 살았더라도 제 땅 아닌 담에야

사람 몰려온다고 어쩌겠나 제가 떠나는 것이지.

 

{뒷산 놀이터에서 여산(廬山)을 떠올림이 우습기는 하다만...}

 

     橫看成嶺側成峰 어찌 보면 산줄기 저리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다 다르네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을 모름은

     只緣身在此山中 내가 그 산 속에 있는 까닭이겠지

 

그건 여산의 기묘함에 혹해서도 아니고

관측점에 따라 실상이 달리 보인다는 상대성원리도 아니고

인식의 갇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러니 깨달음이 어찌 쉽겠냐는

탄식이었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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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산속에 있으니까”로 솟아난 옛적 일인데...

다산이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림은(小山蔽大山 遠近之不同)”을 지은 게 일곱 살 때였다던가...

시는 아니지만, 이렇다 기억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여섯 살 적 일이다.

피난 시절인데도 산(대구 고산골)으로 가족 나들이를 갔다.

자리를 펴는 동안 나는 밤나무에 올라가 둘러보며 한마디 흘렸다.

“산 속에 들어오니 산인지 모르겠네.”

그러자 누님의 쫑알거리는 소리...

“쬐꼬만 게 미쳤네.”

 

그 소리 다 들었는데, 어른들은 뭐라 말씀이 없으셨고...

그 후 “교만하면 안 돼”라는 교훈을 가위로 하여

탁월의 가능성이 돋을만한 가지마다 무자비하게 전지(剪枝)하신 아버님 덕에

나는 바위틈에서 삐져나온 다복솔처럼 영 크지를 못했다.

{이 나이에 무슨 원망도 아니고

기듯 낮은 키로 깔린 꼬락서니의 내력을 읊은 거야.}

 

산벚꽃 지고 팥배나무 꽃 아직 남아있고

조팝나무, 이팝나무들은 한꺼번에 터지려고 숨고르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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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 새순 보고

버리려면 왜 땄는지 점점이 흩어진 철쭉 보고

구름 보고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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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r crossing’에서 치여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사슴의 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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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이니 신호등이나 건널목 표지는 있으나마나...

나가지 말아야 하는 건데

그 충동을 달랠 길 없어 fence까지 만들어놨지만

제가 뭐 빠삐용도 아니고 쇼생크 탈출? 것도 아니지.

그건 알았어야 돼, 보호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네 자유는 끝난다는.

철조망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그렇지만 수평선 너머 한 소리 들려온다고, 그게 널 부르는 소리라고

죽어도 좋다면서 굳이 나가겠다면

아래를 쑤시든지 위를 타넘든지 나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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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해서라고 그러지 않겠다.

너는 그러기를 바라면서 감행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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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꾸는 산인데도 가지 쳐낸 고사목 하나 그대로 서있다.

학동처럼 “뚫을 곤(丨)!” 외치고는 피식 웃었다.

 

작달비 들이치듯 꽃잎이 마구 쏟아져 내릴 때도

가슴이 따라 앓지 않았는데

이 좋은 날 못 말리는 신록의 춤을 보면서

맘이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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