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
살림공동체 식구들께
오늘은 소만입니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 사이, 음력 4월의 중기로 양력 5월 21일경입니다. 씀바귀가 뻗어 나오고,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보리가 익어가며,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베기에 바쁜 철입니다. 소만은 입하 다음 절기이니까 이론적으로는 여름철인데 이북 속담에 이런 게 있습니다. “소만 바람에 섬 늙은이 얼어 죽는다” “소만 바람에 소 대가리 터진다”라는.
그래, 왜 작은 小 찰 滿을 썼는가 하면, ‘만물이 점차로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뜻인데, 아직 넘칠 때는 아니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냥 ‘풀 빛’이라기에는 정조(shade)가 너무 여러 가지라, 속옷 색깔로는 짙고, 겉옷 색깔로는 옅은, 그런 초록 있잖아요?
나희덕 시인이 ‘소만’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는데, 이렇게 시작하지요.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사진을 너무 줄여 잘 안 보이지만, 어미를 놓칠세라 쫄랑쫄랑 따라가는 아기사슴이 있다.}
이맘때면 Smoky Mt.을 가곤 했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그게 좋은 거네요. 헐벗음 지나간지 오래 되었지만 무성(茂盛)에 이르지 않은, 차고 이우는 주기에 따르면 상현과 만월 사이, 음력 열하루께 쯤으로 잡으면 되겠네요.
그때가 좋은 때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고요? 넘치지 않아도 넉넉한 때입니다. 모자라는 것 같은데 섭섭하지 않은 때입니다. 그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그럼 그게 행복 아닙니까?
고대 희랍인에게는 ‘행복’이 ‘행운’이었습니다. 좋은 운수(eudaimon), 질적으로 우수하고 양적으로 많은 몫이 행복을 구성했습니다. 그건 현대인의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도 않겠네요. 그런데, 옛적 희랍인들은 과분한 운수가 신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도록,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넘칠 것 같으면 비우고, 더 자랄 것 같으면 치고 그랬지요. 소크라테스가 한 말, “너 자신을 알라”가 실은 “네 분수를 알라”는 가르침이었거든요.
그러면, 그 ‘자발적인 포기’가 가능한 단계는 결국 넘치기 직전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넘치기 직전’을 감지할 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던걸요. 갈 때까지 가던 걸요. 갈 때까지 가면? 망하지. 터지면 다 새더라고요. 샌 것은 주워 담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예 좀 부족하다 싶을 때에 만족한 걸로 여겨야 합니다.
작년 유월 초순께 만수대에서 만난 산목련
차지 않는 게 좋고, 비운 채로 괜찮다면, 그럼 얼마나 차면 되겠는지, 박탈감 없이 자유함을 누릴 만한 게 어느 정도인지, 정상은 올라가지 않고 칠부 능선에 머물러야 하는지, 딱 몇 %라고 할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머리를 돌려 사람을 한 분 소개하려고 그러는데. 고인을 이렇게 말해선 안 되는 건데, 그분은 아무렇게나 생겼습니다. 대책 없는 생활 무능력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해서 볼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담 뭐...”싶겠는데, 환갑 지났으니 살만큼 산 사람이었는데, 죄도 꽤 지었겠는데, 그렇게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그는 천진난만했습니다. 시인이었습니다. 어떤 시를 썼냐 하면, 이런 것. 제목은 촌스럽게도,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몇 해 전에 그 분이 별세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 하늘로 돌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그는 ‘귀천(歸天)’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렇게 말하자니 죄송한데... 아... 당신 혹시 “이담에 내 생애가 위인전으로 소개된다면 어떡하나?”로 고민하는지 모르겠는데, 염려 푹 놓으시라고. 절대로 그런 일 없을 테니까.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하려고 준비하지 마십시오. 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쓴 분 있잖아요? 만난 적은 없지만, 이름 보니 내 형님이겠는데, 참 안 됐습디다. 병을 얻었다는데, 피해 다니다가 돌아오긴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속담에 할 일 다 하고 죽은 일 귀신 없다고 그러잖아요? 이 세상에 모든 목적을 다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 “세계는 아름답고 인생은 참 좋은 거구나.” 그러면 되겠습니다. 뭐, 셈할 날이 있으니, 그게 좀 걸리긴 하는데, 그랬잖아요?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 다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그러니, 지금은? 쉴 때입니다. 손에서 일 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비우라는 뜻. 심리학자들이 그러지, 사람을,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 다섯 가지.
첫째는 “어디 두고 보자”고 하는 복수심이며, 둘째는 겉돌기만 하는 허망한 야심이며, 능력도 없고, 계획도 세우지 않으면서 개꿈은 계속 꾸는 그런 것 말입니다. 셋째는 꼬집고 할퀴는 질투심이며, 넷째는 한도 끝도 밑도 없는 욕심이며, 다섯째는 돼먹지 않은 자존심이랍니다. 영혼의 밑바닥에 죄악의 찌꺼기가 깔려있는 한, 아무도 참된 휴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죄악의 응어리가 “쑥!” 빠져나가야 한번 제대로 쉬어 볼 텐데!
마침 제 책상 위에는 계영배(戒盈杯)가 놓여있습니다. 칠 부 이상 부으면 밑 빠진 독처럼 전체가 새어나가고 맙니다. 그쯤으로 설명이 다 되었겠지요?
가서 그저 한번 보고 또 헤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게 눈만 맞추었어도 사랑을 확인한 줄 알고 다음 만날 때까지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