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계절에
나 아파
그런다고 누가 달려와 보살펴줄 것도 아니니까
“How are you?” 그러면
“I'm sick.” 하고나서 으슬으슬 떨리고 골치가 지끈거리고 목이 뜨끔거리고 배도 아프고...
증세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Just fine, thank you, and you?” 하고서 지나치면 된다.
그래서 아픈 사람도 명랑사회 건설에 일조하자고
우울모드에 진입한 다음에도 꽃 얘기나 하잖니.
뉴스 엮인 글? 블로그에 그런 걸로 도배할 게 아니지, 뉴스만으로도 이미 피곤해졌는데...
노류장화라는 말이 고운 뜻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담마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두고 그런 생각할 건 없다.
지나가는 이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니 고맙지.
서울은 뭐라도 넘치는 곳
사무실 창밖으로 내다보면 재개발지역 단정치 못한 거리에도 집집마다 담장미가 삐져나와있다.
내 집 내 꽃 아니지만 보는 사람 즐기는 이가 임자지
좋구나, 너 참 예쁘다.
돌아온 지 한주일 지났다.
짧은 머묾 동안 이태를 돌보지 않은 정원에서 웃자란 가지들 쳐내느라 땀 좀 흘렸다.
가꾸지 않았으니 아무렇게나 자랐고 꽃들이 작아졌지만
장미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치자나무는 물 빠지지 않는 땅에서 죽어버렸고, 화초(perennials)들은 잡초에 가려 사라졌지만.}
옛날 옛적에 흔히 불려지던 번안가사가 그랬지,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딱 그러네.
중부 텍사스의 장미 계절은 남쪽이라 그런지 4월 중순쯤이다.
무더위 지나면 다시, 그런 식으로 한 해 세 차례쯤 피지만
꽃이 크기로는 봄에 처음 필 때이다.
그러니 한번 졌다고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어있을 때 봐주는 게 좋지, 늘 경험하면서도 훗날
“장미가 지고서야 그 아름다움을 알도다” 타령은 이제 반복하지 말아야지.
{애별리(愛別離)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있을 때는 잘 해야지.}
그런 노래 부르면 안 된다면서 또 가사를 다운로드한다만...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부분)
어제는 가버렸고(過去, past)
올 날(來日)은 오지 않았으니까(未來)
있는 건 오늘(to-day)뿐이지만
오늘이 하도 시답잖으니까
“그때 참 좋았어” 하는 것이다.
내일은 주시면 받는 선물이니까
예산 책정 항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꿈과 바람(願望)이 없겠는가
내일이야말로 없는 자의 밥(daily bread)이다.
해서 그 땅 다시 돌아보면서
뭘 할 수 있을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앞에 반듯한 땅 7 에이커(1224평 X 7)가 있고
뒤로는 가운데로 개울 흐르는 땅이 또 그쯤 되고
‘민속촌’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서부 개척기의 본정통 흉내는 냈고
이런저런 건물들 몇 채 있는데
음, 수양관, 연구소, 조기유학생들 기숙사, 장미원, 약초 재배, 옛날식 음악다방...
TGIF, 좋은 오월 금요일 오후에
나다닐 형편 안 되는 아픈 몸이지만
마음은 텍사스 벌판을 뛰어다닌다.
{쓰던 연필 놓고나니 이런저런 걱정거리도 다시 다가온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