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1)
감꽃 떨어지고 원추리 필 때쯤 되면 슬슬 걷기만 해도 땀이 밴다.
나무들은 맹렬하게 세(勢) 불림에 나섰다.
하고 싶은 일, 하기 좋은 일 아니라도 해야 할 일은 많아서
보리 베기와 모내기 끝났다고 자빠져 쉴 수는 없으니까
오늘은 콩밭에서 김매다가
뻐꾸기 소리 들려오자
손놓고 나무에 기대앉는다(休).
휴우~ 한숨쉬고 나면 또 일어나야 하지만
그런 깜빡 쉼(休息)이 아니고 이젠 아주 쉼(安息)이면 좋겠다.
깨닫자고 하면 쉬지 못하지만 쉬다보면 깨달음도 있겠고
보리수(菩提樹) 아니라면 어때서?
이 나이라면 이제 ‘수하기(樹下期)’이어야 한다.
나무 참 많구나.
{출처불명 동요인데}
가자가자 감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갓난 애기 자작나무/ 거짓말 못해 참나무
꿩의 사촌 닥나무/ 낮에 봐도 밤나무/ 너하고 나하고 살구나무
동지섣달 사시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 바람 솔솔 솔나무/ 방구 뀌는 뽕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아흔 지나 백양나무/ 앵돌아져 앵두나무/ 입 맞추자 쪽나무
칼로 찔러 피나무/ 엎어졌다 엄나무/ 자빠졌다 잣나무/ 서울 가는 배나무/
죽었네 죽나무/ 살았네 살구나무 / 그렇다고 치자나무 /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나의 갈매나무는 무엇?”이라는 화두까지 나온 것은
순전히 백석 때문이리라.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부분)-
못난 나무 쓸모없는 나무는 벨 가치도 없어 오래 산다니까
이만큼 산 것도 내 못남 덕분이려니 싶기도 한데
볼품없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신경림, ‘나무 1’ (부분)-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해는 길고
할 일 아직 많이 남았다.
그림 그리고 있는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