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문에 다가서자 스르르 열리더라?

VIP라서 알아 모신 게 아니고 센서가 異物의 접근을 감지했기 때문이겠네.

그러니까 저절로? 아니고,

‘저절로’의 사전적 의미는 “작위적인 노력 없이 자연적으로”이겠는데

다가가는 사람이 어떻게 한 것은 아니겠으나 그렇게 되도록 고안했고 그에 따라 작동한 것이니

저절로 열린 것은 아니네.

 

 

13110401.jpg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게 어디 있나” 그러는데

과정을 잘 모른다고 해도 우연은 아니고 이치에 따라 될 것이 될 대로 되는 것이라는 뜻이겠네.

그래, 되도록 되어있는 것은 된다.

운명이나 필연, 뜻 없이 따라감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順理로 조정된다는 희망.

일시 무리하게 역행하는 것 같아도 內藏된 자동항로수정이랄까 그렇게 제 길 찾더라는 믿음.

 

{아, 그 ‘일시’가 너무 길 때도 있다.

그러면 없어도 됐을 희생과 손실이 불필요하게 증가하는데

그 슬픈 setback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긴 하더라고.

불유쾌한 회귀가 고착하는 것 같아도 그래 “一時的!”이라 하자.}

 

억지는 됨직 하지 않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

힘센 자가 억지를 부리면 억지로 꺾이거나 逆流가 일겠는데

그게 언제까지 그러겠어?

 

 

 

그래 ‘저절로’는 “힘 안들이고”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애씀 없이 되는 게 있겠냐?

더러 수고의 보람이나 가치가 부질없이 보여 덧없다 하여도

마음과 힘을 다하여 이루려고 힘쓰지 않으면 무슨 이룸이 있겠느냐?

 

 

13110402.jpg

 

 

 

또 “남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라는 뜻의 ‘저 혼자’나 ‘혼자서’라는 말과도 다르지.

“아 글쎄 배밀이나 할까 말까 할 아기가 저 혼자 일어나잖아요?” 그건 호들갑떨 만하지만

“일어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라는 의미로 ‘저절로’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거지

붙잡아주지 않았는데도 일어났다고 ‘저절로’는 아니거든.

 

‘저 혼자’라는 말도 그러네.

존재 자체가 因緣 所生이고 다른 것에 기대어 생기는데(依他起性)

그가 짓는 게 혼자서? 아닐세.

소쩍새가 국화꽃을 피게 하는 건 아니지만

봄부터 {그것도 아닐세, 언 땅에서 살아남은 뿌리까지 생각하자면 지난해로 거슬러 가네}

모든 것들이 合力하여 善을 이루는 방향으로 더불어 움직여줬으니까 꽃핌이 가능했던 거지.

 

 

13110403.jpg

 

 

 

그러니 ‘혼자서’라는 말로 뭘 모르며 자랑할 게 아닌데

아하,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그건 ! ! ! 그래 그래야지.

어울림을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얽히지는 않는 거리만큼의 ‘저만치’

찾아오는 이 없으면 어때?

가능성의 발현과 성취는 자체로 귀한데, 감상과 평가 없으면 어때?

그런 의미의 ‘혼자서’.

{외로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고, 고독을 내세울 건 아니어도 존재양식이라 여기며 살기.}

 

그렇게 사는 사람의 노래...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이 中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13110404.jpg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막으면 막아지겠냐고?

그러니 될 대로 되어 가면 잘 되는 줄 알고 “좋고!” 그러기.

{“히, 늙는 것도 좋구나!”}

그게 ‘절로’의 삶이겠네.

 

오게 되었으니 왔을 것이고 가게 되었으니 갈 것이니

오는 이 반기듯 가는 이도 가도록 두기.

잡는다고 남을 것도 아니고 감췄다고 잃지 않을 것도 아니니

느슨하게 잡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보며 웃음 짓기.

 

 

 

名利에 뜻이 없다며 기껏 숨어사는 시늉 하면서 “왜 날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 그러면

그거 웃기는 얘기 아냐?

그야말로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그렇다고 ‘影不出山 跡不入俗’이라고 내걸 것도 아니다.

조금 넘어서는 것! 그러지 않으려고 애쓸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껄껄 웃자고. {더 나아가지 않으면 돼.}

 

 

13110405.jpg

 

 

눈길에 날 찾아왔다? 맞아들여야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들이지 마.” 그러면? 그 사람 안 보지.

사랑이 무슨 독점욕도 아니고.

 

 

 

쭈그렁 할마씨가 사과 한 바구니 놓고 진종일 쪼그리고 있는 게 안 돼보여서 몇 번 산 적이 있다.

“그거, 落果를 주워온 건데...”라는 말에 그만...

{흠, 내 꼴이 꼭 그런 겨.}

 

 

13110406.jpg

 

 

팔자고 내온 것도 아니니

지나가던 장꾼 무심코 던진 힐끗 눈길에 가슴 뛸 것도 없고

게슴츠레한 눈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들어오거든

“거 볕 가리지 마셔.” 그러고 또 졸기.

 

 

 

여름 가고 겨울 오고.

아, 사이에 별도의 짧은 轉換期가 있지.

急激한 metamorphosis를 준비하는 동안 이미 변화하는.

 

 

13110407.jpg

 

 

그렇게 저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