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2)
주말이라고 따로 갈 데가 없는 사람에게
뒷산이라도 있으니 감사하다.
아직 몸만들기 하겠다는 이들 위해 운동기구 있는 공터도 더러 있어
아줌마 급 할머니들도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한적한 길 따로 찾다보면
길 아닌 데로 들어섬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쉬는 숲을 건드려 미안해지기도 한다.
길이라서 가는 게 아니고 내가 가는 데가 길이라는 얘기
밀려났거나 피해 다니는 주제에 할 게 아니지.
사람이란 사람은 없듯이
도토리나무나 참나무라는 건 없고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속’에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가 있고
잎 모양과 수피(樹皮)에 따라 구별하기가 어렵지도 않고
이름도 쓰임새에 따라 재미있게 지어졌다는 얘기 듣기는 했다만
초목 이름 잘 아는 그가 짚어가며 일러주기 전에는
그런 분별지(分別智)가 무슨 소용에 닿으랴.
이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부르기는 해야겠기에
선생님, 사장님, 언니, 여보세요... 라는 호칭이 생겼겠는데
저기 있는 저 나무를 뭐라 부를지 몰라서
눈길 이내 돌리지 않고 그냥 웃어주었다.
지나가는 길인 줄 아니까
지나치는 이가 얼마나 오래 쳐다봤나 마음 쓸 건 아니다.
나무는 나무끼리 연애하는데
떠나지 못하고 죽도록 한 자리에 머물 이들끼리
토라지거나 싫어하면 그거 참 죽을 노릇이겠다.
잎이나 가지로 맞닿은 건 그렇다 치고
아래로 얽힌 것을 이제 와서 어떡하란 말이냐.
사랑이 견딜만하면 그건 사랑 아니거든.
미움 되기 전까지는 사랑인데
사랑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서
이러나저러나 같이 있기는 참 어려운 것이지만
나무는 나무끼리 모여 살지 어쩌겠냐.
그러니 나는 그냥 간다.
다시 들리겠지만 또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크지도 않은 숲인데 쑥국새 소리 들리니
마음이 쏴아~해진다.
오늘도 간간 쑥국새 울음은 깃들어선
이렇게 두 눈 그렁그렁하게는
흰 구름 저편까지를 바라보게 하는데
-고재종, ‘정자나무 그늘 아래’-
깊은 산 한번 가야 하는데...
가서 물소리 들으며 “수이 감을 자랑마라” 한번 뽑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