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나른하게 풀어진 것도 아니고 유월 하늘이 어쩜 저리 청량한가
없던 시절에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던 딱 그 가을하늘이구나.
The year's at the spring, 봄이에요
And day's at the morn; 아침이고
Morning's at seven; 일곱 시나 됐나
The hill-side's dew-pearl'd; 언덕엔 진주이슬 덮였고요
The lark's on the wing; 종달새 날아다니고요
The snail's on the thorn; 달팽이는 가시나무에서 꼼지락거리고요
God's in His heaven--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All's right with the world! 뭐 세상 잘 돌아가는 중입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는 지나간다(Pippa passes)’라는 긴 극시를 다들 읽어봤는지 모르겠으나
서시처럼 앞에 붙은 구절은 보통 기억한다.
‘일’(식목일, 현충일, 등)에는 쉬지 못하고 ‘절’에만 닫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도 있지만...
공순이 피파는 연중 단 하루 뿐인 휴일에 바깥을 나다니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그가 발산하는 아름다운 기운으로 사인조 악당까지 회개시킨다는... 흠~
“하나님은 하늘보좌에 좌정하시고 세상은 평안합니다”라는 낙천적인 세계관은
뉴턴의 고전물리학과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대위법적 선율에 녹아들어있고,
그리고 시골구석에서 시작한 인생이라도 다사다난하긴 마찬가지였던-속편을 만들어야 하니까-
빨강머리 앤이 속삭이듯 그렇게 말함으로써 긴 긴 이야기가 끝난다는...
그런가, 세상은 잘 돌아가고 하나님은 내려다보시며 흐뭇해하시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니지.
좋아서 옳은 게 아니고 옳다고 좋지는 않고
‘옳음’까지 가져올 게 있나
좋다고 다 좋지는 않고
다 좋다고 해도 좋지 않을 꼬투리 꼭 솟아나더라.
다 좋기에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고 그러면
좋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좋을 것까지 없어도 좋다고 그러며 살자.
좋지 않은 게 좋게 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좋았더라는, 잘 모르지만 좋게 될 거라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좋지 않을 일이 뭐 그리 많겠냐는 얘기.
아무렴 돌이 쌀보다 많겠냐만
{조리질 안하고 밥 짓는 좋은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은 잘 모를 거야}
딱 한번만 돌을 씹어도 밥맛 싹 가시고도 남지만
어금니 시리고 쓴 침 돌더라도 그것 다 삼켰거든.
낟알 구경 못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상 두 그림은 고 이응로 화백의 작품
뒷동산 다녀오는데...
웬 절이 세 개씩이나 들앉았으며
부처님도 귀 막을 시원찮은 독경 소리를 앰프로 증폭 확대 살포하는지?
아무 데서나 이동전화 잘 터지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산에서도 큰소리로 악쓰듯 전화질이다.
사람들 얼굴이 똥색이 되어 피하며 중얼거리는 바람에 그게 ‘도사견’이라는 괴물인 줄 알았네
다 저 닮은 것 데리고 다니는지 이종격투기 선수 같은 아줌마와 세트로 출현했다.
기운 없는 중늙은이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아니, 이 산책 길에 맹견을 데리고 나타나면 되는가?”
{그런 시시한 일에 목숨 거는 어리석은 자여...}
덜 다니는 길(the road less travelled) 찾아 들어섰는데
웬 아줌마가 ‘쪼그려 쏴’ 자세로 앉아 언짢은 표정으로 팔을 홰홰 젓는다.
말은 안했지만 “어여 저리 가지 못해?”라는 뜻인 줄 알고 돌아섰다.
교통순경 아니니까 세상 정리할 것 없고
그저 그만한 사람들이 이래도저래도 괜찮은 세상에서 어울려 살게 되어있으니까
튀지 말고 뛰지 말고 거스르지 말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웬 미친 X이 웃고 XX이야” 소리 안 들을 만큼
보일락 말락 미소 지으며 그냥 지나가면 된다.
정말 어려웠다고 치고
그때 가서 “제겐 정말 해도 너무 하셨습니다.” 그랬다가
“그래, 그럼 다시 살아볼래?” 하시면 그런 낭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그냥 “좋았어요, 더러 쫑알거린 적도 있지만, 감사드려요.” 그러면 된다.
나 뿐은 아니고 세상사람 다 겪는 아픔 가운데에서
그래도 남겨둘 생명에게는 “이건 참 재미있는 놀이야.”라고 일러줘야 할게다.
{그런 거룩한 거짓말이 아직도 통할는지는 모르겠네.}
옆지기가 아무렴 천사 아니면 공주이겠나?
그래도 “Buon giorno, principessa.” 라고 말 건네면
연꽃 웃음으로 다가와 안길 것이다.
위의 사진은 saene.com 대문에서 가져왔습니다.
시골 사는 개인의 참 좋은 홈페이지입니다.
슬프지도 않고 우습지도 않고 그래서 영 미적지근한 맹물 맛 같기보다는
슬픈 코미디? 그렇게 코 한 번 팽 풀고는 눈가에 자글자글 웃음 피어 올리며 살기.
La vita e b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