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같이 가고픈 이
눈 밝아 향도(嚮導) 삼고 싶은 이 따로 있지만
기회는 아무 때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맛있는 떡 한참 배고플 때 먹게 되는 게 아니니까
찬밥 더운밥 가릴 게 아니고 있으면 먹어둬야 해.
살면서 뭐라도 그래, It's now or never.
울산에서 치아 치료받고 두어 시간 기다렸다가-시간이 안 맞아 ‘황진이’ 못 봤어-
“내일은 제끼겠습니다”하는 원장과 함께 떠났다가
번개팅으로 다녀왔다.
주마간산이라더니
이건 토벌대에 쫓기는 남부군 이동 속도보다 빨랐어.
그럴 것 없지만... 언제 또 와보겠냐고...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는 그러지 않기로 하고...
하동에서 밤참 들고 구례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화엄사, 연기암 들렸다가
화개장터니 명경다원이니 엘림 물샘이니 여기저기 좀 다닐 일이 있었고
섬진강 모래밭에서 무좀균 태워죽이고
쌍계 끝까지 치달아 의신에 가서 느티나무 밑에서 눈 좀 붙이고
성산재로 해서 노고단 다녀왔지.
남원 쪽으로 내려가 저녁 먹고 함양 휴양림에 가서 잤다.
‘화엄사 600m’라고 해서 밤길에 불 없이 나섰다가 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돌아왔다.
별똥 참~ 많더라, 막 쏟아지더라.
잠이 안 오네...
콩밭의 까투리처럼 정신없이 퍼먹다가도
맘에 드는 장끼 만나지 못하면 배부르고 등 따신 게 다 소용없는 겨~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
그런 게 아니고...
배가 아팠어.
그걸 안 먹고 하동을 지나는 게 말도 안 된다면서 참게탕, 은어회, 재첩국...
그거 다 돈 내고 사먹는 거라 남기지 않아서가 아니고
풋고추 한 쪽 베물었던 게 걸렸나보다.
혀끝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불이 번지듯 하더니 결국 한밤 복통으로 연결되었다.
크지는 않아도 구상나무가 일주문처럼 서 있다.
산중인데도 다섯 시 전에 밝아오네.
새벽의 고즈넉함에는 적요(寂寥)뿐만 아니라 나태도 숨어있는 듯
흠, 용맹정진하지 않나봐 늦잠이 말이 되는가
종달새는 수직상승한다.
석탑 지고 있는 사자에게 투정부리고
구층암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있다 내려와 보니
스님들이 마당을 쓸고 있다.
또 쌓일 텐데... 쓸어 무삼하리오?
그렇겠구나, 정진이란 뭘 없애자는 것도 뿌리 채 뽑자는 것도 아니고
시간 정해놓고 쓸어내는 것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눈 무게 감당 못해 폭삭 무너져 내리는 지붕 같지 않도록
쌓이지 않게 꾸준히 털어버리는 것,
먼지날림은 어쩌지 못하나 켜켜로 쌓이고 더께로 앉게 해서는 안 되니까.
섬진강은 저문 강 아니라도 저문하니까...
‘섬진강’의 뜻은 ‘쏘가리’가 아니고 ‘재첩국’이다.
Rafting? 그건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나 하지
{“Love is a traveller on the river of no return...”}
그 평화로운 데에서 웬 ‘급류’를 타겠다고?
그냥 자고 싶다, 익도록, 타도록, 재가 되도록.
백두대간 종주! 그쯤이라야 폼나지만
청바지 하나 얻어 입고 구두 신고 나선 길인데 노고단까지 갔으면 됐다.
지리산 할매(老姑)에게 “담엔 쪼매 더 드가 깊은 데서 만납시데이” 했다.
동네 산책길처럼 닦아놓아 좀 그렇다만
그래도 그만큼 올라간다는 건 참 좋더라.
평지에서 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내려다봄.
기분 좋은 숨 가쁨.
가까이 있는 것이 반야봉, 뒤에 천왕봉과 촛대봉이 보인다.
오기로 할 것이라면 땡볕 아래 부동자세로라도, 산정에 혼자 남더라도 기다릴 수 있지만
해지면 안 오려니 하고 내려가는 수빆에.
큰 산/ 작은 산 먼 산/ 가까운 산
흰 구름 날아간다.
보는 것은 그렇다 치고
소리와 냄새는 담아오지 못해 아깝다.
온 누리가 밤꽃 내
그게 예전엔 살구, 음 또, 젤겐스 로션 냄새였는데
에고 골치야, 이젠 쉰 걸레 내이구나.
평지는 그랬고...
올라오니 함박꽃 아직 좀 붙어있다.
{그 봉오리며...}
목련 같지 않아서 그렇게 다닥다닥, 활짝, 야단스럽지 않지만
아 그 냄새만은 heavenly.
그리고 누가 심지도 않았을 텐데 치자꽃이 웬 일?
꽃만은 아니다, 풀들, 나무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짐승들의 미미한 흔적...
소리는
부딪침 때문일 거라?
모든 음악은 타박상이 생길 때 나는 소리.
눈 없는 바람이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헤맬 때
가지를 흔들고 잎들을 비비는데 조용할 수는 없잖아?
물의 흐름을 바위가 막고 강바닥에도 돌이 깔렸으니까
아프거나 아픔을 주지 않으며 물이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다.
더러 졸졸거리기도 하고 더러는 너 죽고 나 죽자며 부딪쳐 굉음을 내기도 한다.
‘운다’고 하지 않고 ‘노래한다’고 해도 아픈 건 마찬가지
속울음을 감추지 못하면 울림 되어 커지는데
남의 속 알지 못하니까 “그 음악 참 좋다” 그러더라.
가는 것들은 다 울며 간다.
“기러기 울어 예는” 그랬고
왕방연 형편 아니라도 그렇지,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잡지 못하는 자는 남아서 울고.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라고?
멍들었던 것 한참 후에 겉으로 드러나면 그때는 매화 핀 듯 하더라
못 다한 얘긴 나중에 잡어매운탕으로 욹어 먹기로 하고
그럼...
하, 하루 지나치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 하겠니?
뭘 모른 채로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