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
버스가 어떤 정거장에서 서고 문을 열자
머리속이 맑아지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명랑케 하는 향내가 쳐들어오는 것 같다.
“응, 뭐지?” 하며 둘러보니 밖에 옥잠화가 무더기로 피어있다.
장마 초입 간밤에 내린 비로 많이 젖어 쑥 자란 꽃대들이 힘겹게 서있다.
내 그 냄새 좀 알지.
와락 달려드는 광(狂)팬의 공세처럼은 아니고
고개 숙인 촌 아낙의 볼이 붉어짐 같은
기세랄 것도 없이 스며드는 냄새일 텐데
설마 이게 옥잠화 향기?
옥비녀 같다 해서 옥잠(玉簪)이라 그랬을 것이다.
뒤꼍 장독대를 높여 놓느라고 파서 움푹 들어간, 습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런 데에서 자라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ground cover였다.
볕 많이 쬐고 나면 창백한 연두색이 진녹색이 되어 매력이 떨어졌더랬지.
그런데 저것들은 그렇게 작지도 않고, 흐릿하지도 않고, 부끄러움도 없고
구릿빛 허벅지 드러내는 미니스커트 차림 처녀들처럼
뻔뻔 당당으로 뽐낸다.
너희들 옥잠화 맞아?
나도 딴 데 살면서 여러 종류의 hosta를 심었다마는.
내리려는데... 응? 아까 그 냄새 또 난다.
어디지? 흠흠...
뒷자리가 비었는데, 좀 전까지 앉았던 아줌마의 향수?
벌름벌름했지만... 노인 방에 들어갈 때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우산을 쓸까말까?
잦아들다가 그치다가 이어지다가 쏟아지다가...
그럴 것이다.
시간은 걸려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장마라도... 별 일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