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기행
사과꽃 필 때 오지 못했지만
사과 익을 때 오지 않았지만
사과 때문에 영주 간 건 아니니까
사과는 거기 말고도 널렸으니까.
꿩 먹고 알 먹고 탕으로 우려먹고 뽑은 털로 이 쑤시듯
일거양득, 일석사조, 다목적 성취... 세상일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One at a time.
거기에 부석사가 있고 소수서원이 있고
34년간 풍기에서 교사로 머문 친구가 은퇴하기 전에 한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나 해서.
금요일 오후 7시쯤 출발했는데 막히지 않네, 장마철이라 나다니지 않는 모양인가?
휴게소에 들려 국밥 들고 쉬었는데도 10시 전에 들어갔다.
선비촌 한옥에서 묵기로.
예약한 방이라고 이마 찧기 딱 좋은 낮은 문으로 기다시피해서 들어가 보니 너무 작아
안채 두 방을 쓰기로 했다. 대청은 따라온 셈.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시중이나 들다가 먼저 누웠다.
하룻밤 묵은 집
새벽에 혼자 나돌아 다니니 좋다.
들꽃들이 널렸기에 쪼그리고 들여다보지 않는 게 아니고
다시 일어날 건데 뭐, 딴 데 인사하는 것 보고 속상해지겠지 뭐
해서 먼발치에서 손 흔들기 식으로 지나쳐갔다.
소수서원. 그게 말하자면 ‘Academia’이다.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명종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림으로써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이 되었다.
서원이 당파 조성의 온상이라는 역기능 탓에 눈총받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었지 싶다.
규모와 수준이 수십 년 후에 딴 나라에서 세워졌던 하바드 대학보다 못할 게 없다. {내 얘기}
이제는 폐도처럼 된 영월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 끝에
실은 반대파 일망타진의 음모였던 ‘단종 복위’ 도모 사건으로 죽계천을 혈하로 만들었던
과거를 돌아본다. 피끝마을, 순흥 안씨...
늦잠에서 깬 이들이 투덜거리며 일어나고, 챙겨먹고, 부석사로 갔다.
명품 감정사의 진품 진술서들 중에 명문이 많은데 내가 뭘 보태겠나...
이건 뭐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니니까...
위에서 보지 않았으니까, 봐도 모를 사람이니까 듣고 그런가 보다 하지만
가람 배치가 ‘빛날/ 꽃 화(華)’ 자로 되어있다고. 음.
길 따라 걷기만 해도 참 좋다.
일주문에서 대웅전-부석사의 경우 무량수전-까지 가는 길이 멀지는 않아도 가파라서
(백팔 계단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는 찬송 가사를 '불자'가 번안했다는 시비도 있었지만
그렇구나,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선대로부터 ‘이성 관계’가 복잡했던 의상(義湘) 대사
그렇다고 흔들림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모하던 여인은 복전(福田)이 되고
해룡(海龍)-응?-이 되고‘수호성인’-딴 종교에서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이 되고... 괜찮네?
생각날 때마다 자꾸 들었다 놨다 해서 떠다니면 안 되니까
누름 못(押釘)을 꼽았다 마는...
무량수전.
그 오래 됨.
무량수(無量壽) -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건축의 아름다움은 내가 잘 모르는 얘기니까...
그냥 오래 되면 배흘림기둥처럼 되는... 사랑이란 그런 거 아니겠나 싶고
한 아름으로는 잘 안 되는...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같이 떠다니게 되는.
눈여겨보지 않을 축대의 돌조차도 일찍이 왜군들이 감탄하여 축성 기술자들을 잡아갔다고 한다.
{알고 보면 다 새롭다. 오래 될수록 더 새롭다.}
여염집에 단청 입혔다고 정진 도량이 되는 것 아니고
금칠 벗겨졌다고 부처님이 부처님 아닌 게 되지는 않지만
해 같이 빛나셔야 뵙기가 낫겠지.
샘에 웬 수국 꽃잎이 떠다니기에...
내려다보니 다 좋다.
내려가면 또 그렇겠지만... 슬픈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 다른 벡터(vector)는 아니니까.}
헤어지긴 좀 이르고 해서 부슬부슬 비 뿌리기는 했지만 희방 계곡으로 갔다.
{비로봉 올라가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주차료 냈는데 또 입장료 내라고 해서 쩝.
“아 국립공원 입장료는 없어졌잖소?
우리는 사찰 경내를 통과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무량수불은 뵈었고...”
절 250m 반경 이내를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야 한다고.
기어이 값 치르지 않고 계곡으로 침투하기로.
알 까고 죽으러 회귀하는 연어처럼 비장 삼엄한 기백으로 치솟는데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물이 너무 차다. 장마로 불고 물살이 빠르네.
발이 너무 시려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마른 돌 찾아 내딛는데...
아니 넌 언제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냐?
살모사가 똬리 틀고 있다가 대가리를 빳빳이 세운다.
어렸을 적에야 취타대 고수의 손에 들린 북채처럼 경쾌한 동작으로 두들겼다만
지금은 멸종위험의 보호종 아닌가?
“너 나 알아? 사막의 방울뱀과도 친구였다만...”
피식 웃더니 자리를 비켜준다.
노각나무, 산뽕, 개살구, 고로쇠, 졸참, 떡갈나무, 때죽나무... {모르면 할 수 없고, 틀렸다고 알 게 뭐야?}
그렇게 헤아리다가
다들 배고프다고 해서 내려왔다.
풍기에서 냉갈로 넉넉하게 채우고
잘 있기로 하고...
내 마음 칠월은
드릴 열매에 단물 드는 시절...
Half-time, 후반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