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아가리라

 

그때 Knoxville, Tennessee를 지나서 큰비를 만났다. 

Divided freeway도 아닌데다가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가는데 앞이 보여야지, 시계 제로.

차 대고 쉴 만한 갓길도 없고

18 바퀴 트럭들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지 빨리 비켜나라고 경적을 울려대고 그랬다.

운전하는 게 아니라 깊은 물속을 유영하듯 잿빛에 빨려 들어갔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를 부르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밝아지더니 ‘Welcome to West Virginia’라는 입간판이 나타났다. 

살았구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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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경계에 있는 안내/ 휴게소에서 좀 쉬고 다시 고갯길로 올라가는데

방금 비 그쳐서 그런가 하늘에 무지개 걸렸을 뿐만 아니라 땅에서 영롱한 빛들이 솟아오른다.

초장에는 Alpine poppy, daisy, aster, coreopsis 등 들꽃들이 세수한 얼굴로 방실거리고

비 피하다가 나왔는지 양과 소들이 여유로운 동작으로 이동한다.

거기 쉐난도 강이 있거든, Harry Belafonte가 불렀잖아, 영화도 있었고...

“O Shenandoah I long to hear you... Across the wide Missouri”

아, John Denver가 ‘Almost heaven West Virginia’라고 그런 게 뻥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런 데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 스치기는 했는데...

경치가 밥 먹여줄 것도 아니고, 한인들이 근처에 있기를 하나, 아이들 찾아오기가 쉬운가...

아니지, 그냥 지나치면서 “야~”할 곳이다.

살던 사람이 찾아오는 길이라면 모를까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은 내가 부를 노래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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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가을, 서 있기도 힘들어하시는 박충집 원로교수님은 ‘영시개론’이라는 과목 하나만 맡으셨다.

도강(盜講)이랄까 그냥 다른 학과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거기 끼끗한 학생 못 보던 얼굴인데 0페이지의 시를 읽어줘요.”로 걸렸다.

음성율 같은 것을 배운 바도 없지만 아는 시니까... W. B. Yeats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 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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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은 끝났는데, 말없이 계셨다.  조는 듯 눈감은 채로.

조금 있다가 매놓은 뱃전에 다가와서 슬쩍 부딪는 물소리 정도 크기로 “좋구나.” 그러셨다.

{“잘했어요.” 그런 게 아니고.}

그 후로 대학로-그때는 개천을 끼고 있었다-를 걸을 때마다

“내 마음 깊숙한 데에서 그 소리 들리네”로...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th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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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 섬으로.”

가서?

거기서 어느 정도 평화를 얻겠지만 

콩밭 몇 이랑 일구고 벌통 하나 들여놓고

‘아주’ 거기서 살리라?

예이츠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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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할매... 그런 쪽으로 따지자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꼽을 수 있겠다.

그때는 돌아가서도 잘 살 수 있었으리라.

그는 마흔한 살에 돌아갔는데

나는 이십 년을 더 매여 있다.

언젠가 놓여난다고 치고 그럼 어디로 가지?


꽃잎 떠내려 온다고 역 추적하면 복사꽃 피는 마을이 있겠는지?

가봤다는 사람이 없다.

{그런 데가 있다고 치고, 거기서 누가 산다고 치고

나와서 일러주기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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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명미(風光明媚)한 데에 양옥 잘 지어놓고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펜션 ‘사업’...

능력 없는 자가 배 아파서 하는 “신 포도는 안 먹어”이겠지만

그거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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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 건지 알지 못하고 갈 데가 있다고 갈 수 없어도

‘나는 돌아가리라’ 라는 비원(悲願) 하나 품은 게 잘못된 건 아니겠지.

꿈 깨?

밥만큼 꿈도 먹고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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