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2
엔간히 멀어야지, 가는데 워낙 많이 걸리니까 ‘거기’에 닿고 나면 저물녘이 되고 만다.
{미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자면 늘 그렇더라고.}
거의 Missouri 가까이 올라간 Ozark National Forest, 그게 중부에서는 알아주는 단풍 명소인데
단풍 업데이트 방송에서 절정이 지났다나, 아깝지만 할 수 없지
그 아래 Ouachita National Forest를 돌아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떠났다.
‘National’ scenic drive라고 해서 Hot Springs에서 Hwy 7을 타고 올라가는데
“뭐땜시 national? 뭐이 scenic?” 시간만 더 걸리는 꼬불꼬불일 뿐 볼 게 없더라고. (투덜투덜)
소나무 등 침엽수가 대부분이라 물든 나무는 새치만큼도 안 되더라고.
숙박예정지인 Russellville에 도착했으나 하루 공친 것 같아 저녁 들기 전에 좀 더 올라가보기로.
I-40를 지나자마자 “으앙, 이게 뭐야...” 거기는 불타고 있었다.
절정 지났다는데, 그래 지났다 치고 “우와, 저 정도는 돼야 볼만한 거지.”
안타깝게도 해가 꼴깍하는 거 있지.
어두워진 다음에는 좋다는 데 좋을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목적지(목표)에 도달했는데 목적을 상실한 셈.
그러면 오는 동안에는 아무 재미도 없고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었는지?
이곳저곳 들러 기웃거리고, 짧은 트레일 몇 개에 달리기 수준으로 발자국 남겼고,
근접거리에서 수리(vultures)를 잡을 수 있었고, 노니는 소와 말들 신경 건드렸고-미안하다-
아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자주 서서 카메라 들고 나가기가 좀 그렇더라.
-그게 그거 아닌가, 똑같은 걸 또 담을 게 뭐야?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 아니고, 여자라고 다 같은 여자 아니듯...
-어머, 기가 막혀, 거기서 여자가 왜 나와?
-(... ...) {설명하긴 좀 그렇지? 아무래도 실언한 셈.}
좋은 시간 가졌네 뭐.
언제 누가 묻힌 것일까?
묘비도 없는데, 그래도 생각해주는 이가 이 땅에 남았는지?
절정 체험은 과정이 좋으면 얻을 수 있는 것.
그럼 과정이 좋으면 절정은 그냥 따라오느냐? 아니지.
애석하다고 할까, 끝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더라고.
왜 풍년을 기대했는데 막판에 태풍이 불어 잘 익은 과일이 몽땅 떨어지든지
거두기도 전에 며칠이고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져 선 채로 썩어버린 이삭이나 채소 말이지.
그러니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
맞아, 과정이 좋다고 늘 끝까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거지만
과정이 좋지 않은데 끝이 좋다? 하늘이 복을 내리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
혹 끝이 좋지 않을지라도-그건 모르지-
단계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최선을 다한다고 그게 무슨 북쪽에서 사람 죽이던 천리마 운동, 별보기 운동 하자는 게 아니고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더라”로 자신이 인정할 만큼 ‘지금 여기’를 즐기자는 얘기.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러려면
과정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여길 게 아니고 과정이란 곧 목적 시리즈라고 여길 것.
더 좋은 일? 생길 수도 있겠지만
未完이긴 하나 이만큼만으로도 괜찮음!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한잠 자고
아침에 눈뜨면 또 하루, “오늘도 진진할 거야” 기대하며 더 나아가기.
다음날 비가 좀 뿌렸다.
가을 날씨가 그렇지 뭐.
무슨 머피의 법칙 따위를 들먹이며 하늘이 훼방 놓는다고 불평할 게 아니지.
좋아, 좋았잖아?
아뿔싸, Talimena Scenic Byway를 지나가는데 또 黃昏.
Rich Mountain의 꼭대기-8부 능선이 아니고 가장 높은 곳-에 길이 12마일 정도 났거든.
Shenandoah National Park처럼 視界 청소가 잘 안 되어 내려다볼 outlook-전망대-가 별로 없지만
고도 2500 ft 이상 되는 길에서 어둠이 깃털로 떨어지는 들판을 보며 운전하는 맛도 괜찮네.
단풍은 그만하면 많이 봤잖니?
부르르 떨어야 절정 아니고 삼투압으로 스며드는 행복감
더 가지 못하게 캄캄해져서 좋은 저녁
그러면 됐네.
Schubert, Fantasy for Piano & Violin in C major, Op.159 D.934 3. Andantino
(Yehudi Menuhin Violin / Benjamin Britten Piano, 1957, m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