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저문 날 (1)
김시습 아니라면 그 말(乍晴乍雨雨還晴) 못하랴?
기상청에서 예보라고 내놓는 것이 늘 그렇던 걸.
“잠깐 개었다 비 오고 한때 내렸다가 도로 갠” 날의 연속이다.
하늘도 그러한데 인심이 아침저녁으로 다르다는 얘기(天道猶然況世情) 할 것 없네.
그런 거지, 그런 세상인데 휘말릴 거 있나 애쓸 일 없고
{‘莫入紅塵去 令人心力勞’ -白居易의 ‘不如來飮酒’에서}
아득하고 어찔하면 누우면 그만 아닌가.
늦사리 같은 사랑 거둘 일 있으면 가슴 한 번 더 뛸 것이고
오랜 길동무 이젠 감잎 같지 않아 찰진 감촉 없어도
목물하며 쓰다듬는 맛이 못할 건 아니니까
그만큼 같이 지낸 세월 감사하면 된다.
혼자 가는 길이라면
가도 되고 쉬어도 되니 좋구나.
주막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가
쉬어서 갈가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갈 줄 모르랴
한잔 술을 모르랴
-한하운, ‘비 오는 길’-
예천 삼강 주막 아직 남았다던가
“살든지 죽든지...” (빌 1:20)
잘 가르치고 잘 배운 크리스천이나 불자들이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걸 보면 참 이상해.
기운 남고 기분 나면 더 갈 것이고
날 저무는데 더 가도 그러면
“우리와 함께 유(留)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눅 24:29)
내일을 모른다고 오늘을 붙잡아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휠 새?
바람불면 다 흔들리더라.
그게 흉이 될 건 없고
출렁이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포석정 주천(酒川) 같은 게 혹 있다 치고 다 제가 들이킬 게 아니니까
그저 한 동이 시켰는데
찰랑찰랑해도 흘리지는 말라고 표주박 하나 동동 띠웠더니
오지 가에 부딪혀 동당동당
어떤 날은 풍경 소리쯤으로 다가오고
다른 날은 범종 소리만큼 울린다.
싸리가지에 흙 발라 만든 굴뚝 말이지
거기에 해질 무렵 쯤 파리 몇 마리 앉아있지 않던?
소멸(消滅)을 감격으로 기다리며
쇠잔(衰殘)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
호롱불 켰는데도 침침하다.
그래도 어머니는 해진 양말 잘만 기우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