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에 깨어
겸재 정선, ‘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
비 내리면 눅눅하다 그러고
개면 덥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하니까 비 오면 우산 파는 아들 대목이라 좋겠다
해 나면 부채 파는 아들 매상 올라 좋겠다 감사하면 되겠다.
아파트 뒤 켠 후미진 공터가 제법 넓은데
거기서 더위 피하고 어둠이 좋아 나온 청소년들이 밤새 떠들다가
새벽께는 불법주차 차량들이 벌이하러 나가는 발진 소음이 무시할 수 없어서
창문 열어놓고 자지 못하거든.
그러니 밤이라 해도 시원한 바람 한 자락 느끼지 못한다고.
갈 데도 없거니와 서늘함 찾아 나와도 별 수 있겠는가마는.
夜熱依然午熱同 開門小立月明中 竹深樹密蟲鳴處 時有微凉不是風
(楊萬里, ‘夏夜追凉’)
동산에 올랐다가 꽃밭을 가꾸는 노인에게 걸려들었다.
구청에서 지원하지 않아 사비로 꽃밭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좋은 꽃들은 파간다고...
-저건 노랑접시꽃이군요?
-거기 황촉규화라고 써놓지 않았소?
-그러니까 촉규화가 접시꽃 아닙니까?
-아니, 황촉규화라고 그러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외교 트려다가 찍 싸고... 아 덥다.
그게 예전에는 으송화(어숭화)라고도 했는데
그 무슨 「~당신」인가 이후 ‘접시꽃’으로 평정된 듯하다.
오래 전에 부르던 촉규화(蜀葵花)라는 말이 남았는데
일찍이 잠참(岑參)이 그랬다.
昨日一花開 어제 한 송이 피더니
今日一花開 오늘 또 한 송이 피었네
今日花正好 오늘 꽃은 썩 보기 좋네만
昨日花已老 어제 꽃은 벌써 시들었구나
한꺼번에 다 피지 않고 층층이 피어오르기에 층층화(層層花)라 했겠다.
하나 질 때쯤 되면 얼른 “임무 교대!” 외치듯 새 꽃이 핀다.
한번 피었다 하면 꽤나 오래 가는 듯싶지만 그게 아니지.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그럼 배롱꽃(百日紅)은?
그것도 그래, 다닥다닥 낱알 열리듯 붙은 꽃들은 하루 이틀에 떨어져도
워낙 여러 개가 계속 피어대니까 늘 붉은 것 같단 말이지.
하하, 언제나 처음처럼!
신영복 선생이 소주 이름까지...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는!
한 사람을 두고서도 그렇다.
어제 너무 서운했는데... 오늘 더욱 그립다?
오늘 그는 어제 그가 아니니까.
그는 그대로 있어 그이고 그래서 그를 알아보는 것이지만
허물 벗고 새 살 돋은 그를 눈부신 듯 바라보며
새 사랑 피어 올리는 또 한 날.
그냥 그렇다는 얘기고
행복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그런가?
조용해진 듯 하여 창문 열어본다.
바람이 있네?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즛는다
-백석, ‘청시(靑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