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일기 1
감씨는 크고 실해서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거든.
{갈라 보면 이미 찻숟갈 같은 떡잎이 들어 있잖니.}
땅 파고 심었지만
그 성의 없는 묻음은 잊혀져서
싹 트고 자라는지 돌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실없는 가능성들은 개꿈으로 사라졌다.}
내가 심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뜰에는 감나무가 자라니까
때 되면
시리도록 파란 스크린에 감빛 물방울무늬 다닥다닥 찍힐 것이다.
바람 부는 날 비 내리는 밤 지나고 나면
파란 어린 감들이 죄다 떨어진 것 같아
치켜다보니 보이는 게 없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잎이 떨어지고 나면 가지가 휘도록 달린 감들이 많기도 하더라.
열렸다고 다 익는 게 아니고
달렸다가 떨어지는 게 많지만
해거리도 어물쩍 거르고 제대로 가지 쳐주지 않은 나무는
얼마나 데리고 가야 하는지를 안다.
많이 잃었어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여기고
갈 데까지 가보자.
가진 것들이라고 다 건질 것은 아니어서
고르면서 또 버리게 될 것이다.
그건 그때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