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일기 4 -개려나
1
열대야로 잠자리가 편안치 않았던 이들이 부수수한 얼굴로 농지거리를 주고받으며
가시지 않은 피로를 피차 달래주는 아침에
말 거는 사람 없는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소나기 한번은 더 쳐들어올 것 같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도 사나운 기운이 숨겨져 있지만
잇단 공습 틈새에 방공호에서 나와 바람 쐬는 기분이다.
환기통 끝에 달린 파랑 헝겊쪼가리 같은 것, 응 저게 하늘이란 것이구나.
처음인 듯, 오래 못 본 듯 새롭다.
처음이 아닌데
처음처럼 좋다.
사실 처음은 처음이어서이지 좋을 게 뭔가
그래도 처음은 생각나고
처음으로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처음에 무슨 다시가 있겠는가마는.
O Sole Mio. 그때 우리는 그런 가사로 불렀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2
그만큼 두드렸으면 열어줄 법도 한데
서운한 마음으로 발 돌려 한참 걷다가
죽었나... 아님 가스중독... 그럼 어쩌지... 덜컥 내려앉았지만
문 부술 용기는 없으니까
그냥 간다.
사람 살지 않는 줄 아니까 기웃거리지는 않지만
닫힌 문 거미줄 친 편지함에 눈길 한번 주고
아무 일 없지, 그럼 뭐가 달라진다고...
그렇게 “오늘도 그 집 앞을 지나는” 의식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3
인연은 내가 짓기만 하는 게 아니고
다가와서 얽히는 거니까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건 아니지만
감당해야 되겠지.
부담(負擔)은 배낭 같아서
따로 돌 때는 짐이지만 등에 착 붙기만 하면 괜찮거든.
그건 필요한 것, 그래야 모양이 나오는 것, 그것 때문에 좋은 것.
지기 싫은 짐은 무겁지만
지겠다고 하면 질 만한 것.
4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욥기 35:10)
어둠도 괜찮다.
필요하니까 지었을 것이고.
빛이 있으니까 따른 것이고.
터널이 좋은 건 돌아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가다보면 빛이 되니까.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흠, 나가려니 다시 쏟아지네?
하늘이 그리 어둡지도 않은데 빗발은 세다.
병원 가는 길에 다 젖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