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Mortem... (1)


감사합니다...


이름 불러 알리고 위로 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경황이 없었고...

그래도 ‘고인’과 혹은 ‘유가족’과의 관계에 따라 ‘조문객’이 참 많이도 다녀가셨습니다.

준비한 장지가 분규, 소송에 휘말려 매장 금지 가처분 상태인 데다가

멀리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야 되니 오일장이 되었습니다.

어제 삼우로 다녀와서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블로거 벗이라는 게...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이면서도

업무상 만나서 잘 알게 된 사람들보다도 속마음을 조금 더 나눌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인사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실명, 혹은 아이디, 그 조차 숨기신 분들을 일일이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제 심비(心碑)에 새겨진 이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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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위로’의 사전적 정의는 ‘고달픔이나 괴로움을 풀도록 따뜻이 대함’ 정도가 되겠지요.

영어로 ‘comfort’는 ‘같이(com)’라는 뜻과 ‘요새(fort), 강화하다(fortify)’라는 뜻이 합해졌군요?


긍휼(矜恤, 불쌍히 여겨 돌보아줌)을 뜻하는 영어 ‘compassion’은 ‘아픔/ 고난(passion)을

같이 한다’는 뜻이고요.  독어로 Mitleid(en)라고 하면 더 분명하겠네요.


사람은 ‘더불어 삶’이니까, 혼자서는 도무지 설 수도 없어 맞댄(人) 존재이어서

‘사이 간(間)’을 붙여 ‘인간(人間, Mit-mensch)'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사람은 또한 ‘그냥 있음’이 아니라 바라고 믿고 사랑하며 나아가니까

향위적(向位的) 존재라서 ‘Fu(e)r-mensch’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잘난 척 하는 게 아니고...

“맞아, ‘홀로’는 아니구나...” 그런 새삼스런 느낌을 표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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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가고


그 옛날 학교 다닐 적에 웬 유엔 사무총장 이름까지 외워야 했는지...

다그 하마슐드라는 분이 있었잖아요?

그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별세했을 때에 곁에 놓인 가방에는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성경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 일기장이 더 있었군요. 거기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는데...

“사람은 올 때 모두 웃는데 혼자 울었으니

{그렇잖겠어요?  아기는 울며 태어나지만 탄생을 축하하는 이들은 즐거울 테니까...}

갈 때는 모두 울어도 저는 웃을 수 있네.”

{정확한 축자적 번역은 아니고 그런 뜻입니다만...}


그의 말로 자주 인용되는 말이 또 있지요.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모든 것을 긍정합니다.”


가버린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있었음으로 인하여

그것과 마주침으로써 내게 일어난 일들로 인하여

감사하면 될 것입니다.

이미 발생한 것, 그래서 영향을 미친 것, 그래서 달라진 것... 지울 수도 없는데

그것이 가령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끼쳤거나

영혼 깊숙한 곳에 아주 오래 가는 흉터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배척하지 못하고 나의 ‘나 됨’으로 남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서 달리 어쩌겠습니까?


올 것에 대해서도 그렇지요.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다가오는 것들

무슨 섭리나 운명이라는 틀을 빌리지 않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받아들일 수밖에요?

내게 온 것을 기뻐하며 혜택을 누리는 편으로...


불행도 그럴 것입니다.

슬픔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용납(accept)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긴 말 할 때가 아닌데...

차차 더 나누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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