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Mortem... (2)
온 사람/ 오지 않은 사람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던 사람 야속해서가 아니고
위로받고 싶었던 이에게서 성의 없는 말 한마디라도 듣지 못했던 섭섭함 때문은 아니고
그대 마음과 내 마음이 구름으로 떠돌다가 만나더라도
이미 방전된 다음이라 무슨 불꽃이나 천둥이 없을 것 같아 슬퍼져서인데...
죽을 듯 큰 병 앓고 난 시인 나태주는 그것을 ‘짝사랑’이라고 불렀다.
병원 침상에 오래 누워있다 보니 알겠다
한번쯤 소식 듣고 와줄 법도 한 사람
끝내 얼굴 보여주지 않는 걸 보니
나 혼자만 짝사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병원 침상에 오래 누워있다 보니 알겠다
애달피 기다리지도 않았던 사람
찾아와 내 손을 부여잡고 나의 맨발에 얼굴을 묻고
눈시울 붉히며 기도하는 이 사람
이 사람의 짝사랑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좋은 소식 전해지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 주지 못한다고
그걸 어쩌란 말이냐?
“눈 감고서 팔 벌려 여기저기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여기저기 찾는다”
소경걸음으로 애 탄다고 웃음거리만 될 뿐 술래 벗어나기 힘들더라.
이렇게 생각하면 편할 것 같네-
‘당신’은 나타나지 않은 사람
‘그’로 남아있는 사람을 달리 부르고 싶은 이름이 ‘당신’일 것이다.
밀어닥치는 화환의 물결...
처음엔 그저 멋모르고 받았는데 나중에는 이럭저럭 백 개가 넘고 보니
상주는 누가 보냈는지조차 모른 채로 폐기물 처리장으로 직행한다.
{전 대통령, 대선 예비후보, 전/현직 장관들의 리본이 달린 것들도 같은 운명이었다고.}
그런 게 왜 필요할까?
말하지 않아도 될 사이라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막연한 사이라면 조화를 보낼 것이고
막역한 사이라면 밤샘을 같이 하자고 그럴 것이다.
남들이 알 리 없는 사이라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 한 마디 없었던 이는 슬픔을 사적으로 누릴 만한 시간에나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됐다.
오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누린 사람이 와야 할 때를
기다리든지 말든지.
별이 떨어졌다는데
꽃 얘긴데...
삶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이 죽음은 꾸민다?
국화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백합, 글라디올러스 등이 흰색을 보탰고
Lisanthus, 분홍 카네이션, 황국 등이 더러 눈에 띄었다.
딱 한사람이 제집 뜰에서 잘라온 옥잠화를 병에 꽂아 영정 앞에 놓았는데
다른 꽃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정성을 보아 그대로 두었다.
Public mourning(공공 애도)에 동원되는 꽃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슬퍼할 때쯤 되어 한 송이로 다가오면 좋을 것을
모가지가 꺾어져 화환을 이루고는 저렇게 천대받는구나.
어떤 분은 와서 조문 인사를 이렇게 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슬픈 표정을 짓기는 했는데...
뭐 하룻밤에도 별은 수없이 떨어지니까...
난 속으로 웃었다.
하늘의 별을 딴 듯이 즐거웠거든.
그때 어둑해서 벌에서 돌아오던 어머님이 인 광주리에 별이 가득했더랬지.
{도시여성인 어머님이 큰어머님 도와드린다고 인 광주리가 위태해보여서 난 키득거렸다.}
대단하긴 하지만 못 이길 것은 아닌 죽음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도저히 친숙해지지 않는
올 때마다 한바탕 소동 떠는 죽음에 진저리나지만
어차피 제 죽음의 때도 다가올 테니까
미리 좋은 말로 잘 사귀어놓자는 뜻일 것이다.
긴 여행 그만하면 편안했던 셈이지만
가친은 삶에서는 유쾌하지 않았고
죽음에는 담대하지 못하셨다.
죽음은 결코 비웃을 정도로 시시한 것은 아니나
삶을 일방적으로 몰아칠 정도로 막강하지는 않다.
난적이기는 하지만
한번 패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O Death, where is thy victory)?”라고 할 수 있다.
제가 뭐라고..
잠깐 사람들이 뜸하고 대자리에 엎드려 맞절하지 않아도 될 즈음에
영정을 돌아보며 뭐라 여쭸다.
“걱정하시던 것 같지는 않지요? 괜찮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