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1
1
끌려가 갇혔던 젊은이들 돌아오게 되었다고?
내 아들 내 딸 살아오듯 기쁘구나.
무슨 다른 말 할 것 없고... 그냥 같이 기뻐하면 되겠구나.
그 뭔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하던가
피랍자가 납치범에 공감, 동조, 대변하는 심리 말이야...
여름 끝자락이 혹독한 채찍이 되어 괴롭히기에
이젠 그만 놓아달라고 사정했더랬지.
아버님 보내드린다고 여섯 가정 열 명이 한 집에 모여 두 주일을 지나는 동안
얼마나 덥던지 실로 견디기 어려웠는데
거짓말처럼 하루 만에 돌변한 날씨에게 뭐라 인사해야 좋을지?
오늘로 남았던 이들 대부분 떠나는데
이렇게 갑자기 닥친 서늘함도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구나.
괜히 여름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있지.
그렇게 괴롭혔던 사랑이 가버렸음을 슬퍼할 줄이야.
구박하던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 게 너무 화나는 계절이야, 에이 참...
사랑이 다툼은 아니지만
다툼처럼 어울리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하지 않거든.
그렇게 싸움처럼 치열하지 않고서는 사랑이 지탱하지 못하거든.
기억하기 좋게 무슨 웃음 같은 게 있어야 했는데
큰 울음 진한 눈물 같은 것도 없었는데
그럼 무엇이 그리도 그립게 하며
몇 번 안 되는 심심했던 나눔을 아쉽게 하는가?
2
지금은 하남시라 그러는가 동부면 황산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에
토요일마다 다니던 때, 5.16인가 쿠데타가 났던 해인 것 같다.
논둑을 걷는데 아버님께서 “이게 들국화라는 거다” 그러셨다.
{아휴 쪽팔려...} 누가 들국화를 모를까봐... 그런 기분이었지.
{그때는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감국... 그런 분별지(分別智)가 없다고
학력위조로 몰려 망신당하지 않는 시절이었거든.}
가시고 보름 지났네. 묻히셨으니 보지 못하시겠지만 ‘들국화’ 많이 피었어요.
아직 붉은 흙이지만
내년 이맘 때 아니 봄만 되더라도
앞에 누울 수 있겠네요.
이 가을에 마타리, 개미취, 쑥부쟁이, 오이풀, 산국 무더기로 핀 등성이에서
눕는 연습 많이 하려고 해요.
끝까지 엄격함을 놓지 않으신 분께 끝까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던 놈이
흰 구름 바라보며 히죽거리려고 해요.
즐겨 쓰시지도 않은 호(雲山)이지만
산허리 두르던 구름이 (저희들끼리 다퉜나)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싸리울 끝에 한 조각 걸려 파들거릴 때쯤엔
말할 수 없는 마음이 만들지 못했던 눈물을
조금 흘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