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5
1
날 꼭 잡아주세요.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날 좀 안아주세요. 자꾸 떨려요.
잠깐이라도 품은 채로... 새나감이 멎게요.
입 맞춰주세요. 불어 넣고 채워줘요. 공허하거든요.
들꽃과 눈 마주치면 곤란한 일이 생겨.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거든.
동정 때문에 갈 길 못 가게 된단 말야.
2
너무나도 갑자기
너무나도 빨리
너무나도 강렬하게
너무나도 맥없이
너무나도 덧없이
3
말이 씨앗 된다는데
일없이 이별노래 자꾸 부르다보면 정말 헤어지게 된다지만
가을에는 그런 노래 부르기로는 분위기가 ‘딱’이라서.
올림퍼스 산은 늘 “운무 더불어...”이다.
거기 사는 애는 늘 눈가가 축축하더라.
만남에 끝이 있어 그걸 헤어짐이라 할 게 아니더라고.
그게 tangential point 같아서 스치듯 건드리고 얼른 달아나는 건데
미시물리학적으로 보자면 그 찰나도 ‘지속’이었다고 그러는가봐.
사귐이란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소리가 들릴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가는 거지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당구공은 부딪치자마자 멀어져가고
그 충돌로 각기 움직임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데
그게 뭐 당구공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지.
그렇지만 {사람은 당구공이 아니니까}...
마주치는 순간에 꽉 부둥켜안을 수도 있고
제 갈 길 그대로 가면서도 눈짓으로 물을 수 있거든.
다시 볼 수 있겠냐고 그래요.
그건 고함치지 않아도 들릴 만큼 가까이 있자는 제안이고
시끄럽지 않은 데라면 숨소리나 심장 뛰는 소리라도 서로 들을 수 있겠다는 바람이다.
멀어진지 오래라서 섭섭함도 쌓였겠지만
만나자고 그랬는데 그리 아니 되어도 더 잃을 건 없으니까
해볼 만한 일이라고.
가을은 재회의 계절이라니까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