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6
1
가뭄에 싹 내지 못한 땅 갈아엎고
마른 먼지 속에 씨알 몇 개 묻었더랬지.
돌보지 않았지만 깍지 더러 달렸네.
붓 뚜껑 속에 몇 알 숨겨왔다는 목화 씨 생각하며
거둘 것이다.
2
가을엔 편지를 쓰겠다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 나니 편지 한 장 쓰고 싶다.
그 많은 잎들 다 떨어져 날리는 가운데
하나를 주워들고 나서
우연이니 운명이니 곰곰 생각할 게 아니고
그렇잖니, 사람 여럿이라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따로 있고
한참 지난 다음에 돌아가 확인하고픈 것도 있고...
아직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고
마지막도 여러 번이라 마지막의 마지막이 지나고도
다음을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지만
오기는 올 테니까
이제 마지막을 생각은 해야 될 무렵이다.
마지막이 오면 마지막이 아니지만
그래도 편지 한 장은 남겨둬야 할 것이다.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 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이성선, ‘가을편지’-
3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 참 번거롭기 짝이 없더라마는
버리면 더 큰 짐으로 따라붙는 귀신같은 것이라서
어쩌지 못하고 지고 다닌다.
어려운 때 철딱서니 없이 사랑타령이냐 할 게 아니고
사랑에 집중하는 동안 힘든 일 다 지나가니까
꼴은 그렇더라도 슬플 때일수록 사랑하는 게 좋다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고 그러던 걸.
4
있는 듯 없는 듯해도 보일 듯 말듯해도
“그 사랑 어디 가겠나” 라는 믿음으로
“사랑이 그런 거지요” 하고 지나가기로.
그렇게 가을 길 걷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