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9
16 야, 하루 사이에 달이 아주 사라졌겠느냐마는
한밤에 깨어 일어난 건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때문이 아니었네.
그래도 무슨 환함이 있긴 있었는데
도시야 밤이라도 뿌여니까 아주 캄캄하겠냐마는 그 얘기가 아니고
배꽃이 만발한 정원을 걷고 있었더란 말이지.
환한 만큼 그늘도 있고 그럴 텐데
그늘 속이라 더욱 밝은 웃음이 있어서 잡으려다가 깼지.
응? 웬 냄새... 무슨 꽃이 피긴 폈구나?
베란다에 내둔 화분 몇 개, 돌보지 않는 난분에서 꽃대가 셋이나 올라왔다.
그거... 어른께서 입원하셨을 때에 누가 들고 왔는데
퇴원 시 버리라고 그러시는 걸 눈총 받아가며 가져온 것이었다.
그저 그런 거야, 무슨 명품이겠냐만...
너와 나만 있다면 절세가인과 영웅호걸의 만남 아니면 또 어떠냐?
너 하나 뿐, 너의 너도 나뿐인데.
그렇게 너로 인하여 감동이 왔고
내 기쁨이 네게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꿈은 꿈이었고
깬 건 난향 때문이었구나.
아니다, 서늘해졌다고 두꺼운 이불 꺼냈더니
무거워 답답했던 모양이다.}
깼으니 헛디디지 않을 정도로 밝으면 뒷산이나 오를까 했는데
비가 내린다.
에고, 최치원!. 알아주는 이 없어 서운한가?
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崔致遠, ‘秋夜雨中’)
부르는 이 기다릴 것 없네.
이대로 안 좋은가?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
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 隨意春芳歇 王孫自可留
(王維, ‘山居秋暝’)
외로운 건 외로운 거니까
이젠 옛사람들 청승떤 게 흉해보이지 않더라고.
둘러봐도 짝될 이 없고 달랑 거문고 하나 마주 보더라는...
更無人作伴 唯對一張琴 (白居易, ‘池窓’ 중)
됐다 뭐...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이해?
낮에 자면 되지.
{무슨 소리 낼 수 없으면 들려오기라도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