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이제는 벌어대기와 밥해대기로 분업화된 사회계약설이 적용되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가먹거나 시켜다먹는 일도 잦고, 음식 재료도 열만 가하면 먹을 수 있도록 된 게 많으니까
‘밥해댐’이 그리 큰일도 아니지 싶기도 한데
그것만 주부의 일은 아닐 것이고...
아, 오늘 바닥을 걸레질하다가...
“이래서 파출부 두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주는 밥 먹고 살 때는 밥상까지 오기가 귀찮아서 “밥 안 먹고 살 순 없나?” 그랬다.
내가 해먹어야 하고 보니 신성한 의무를 집행하는 것 같기도 해서 자못 경건한 무드이기도.
빠트리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점심으로는 실로 오랜만에 라면을 들었다.
제목은 라면이지만 고명이 어마어마하니 SSE급-super-special edition-이다.
{가시오갈피 라면, 한 개에 천 원이니 조금 비싼 셈이지만 소량이라도 가시오갈피가 들었고
개 당 백 원은 대북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돌아가는데
특약 맺은 홈에버가 고전하는 바람에 판매실적이 부진하다.
관심 있는 분은 ‘굿네이버스’로 문의 바람(택배 가능).}
지난 한 달 동안
영화 0회, 음악회 0회, 책 구입 2권...
지출이라고는 식비와 교통비가 전부.
그러니까 소학교 때 주워들은 엥겔지수로 말할 것 같으면 ‘야만’ 수준에 근접한 셈이다.
{음, 관리비와 전화비... 그건 쌓아둔 게 좀 되어 거기서 자동이체로 빠지는구나, 잊을 뻔했네.}
식구들 있을 때 사다둔 게 떨어져서 쌀팔러 시장에 다녀왔다.
어, 생각보다 비싸네?
{농민들은 죽겠다고 그러는데... 쌀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나라이지 싶다.}
쌀, 보리, 포도 조금, 사과 두 알, 콩나물, 두부, 오이, 호박, 그리고 물.
“봉투 필요하세요?”
“주시면 고맙고.” 하자 힐끗 쳐다본다. 20원 추가!
아 그 물이... 아파트 앞 슈퍼에서 1,100원 받는 것을 6병에 3,600원이라기에
“아니, 거긴 도둑이었잖아...” 하고 사들고 오다가 에고, 손가락이 끊어지는 줄 알았네.
나가 사먹지 않아도, 집에서 해먹어도
돈이 안 드는 게 아니구나!
먹는 게... 그게 참 큰 거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그런 거네?
{왕년에 “웬 식비가 그리 많이...” 하자 아내가 “내가 혼자 다 먹어서 그래” 그러더라.}
“먹고살 만하니까...”라는 말도 있지만, 먹고살기까지가 어디 쉬운가?
다른 건 집에 있으니까...
한석봉 어머니 떡 써는 솜씨로 척척 썰어 올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잠깐이지만... 기분이 쫌...
‘깨끗, 꼿꼿, 허튼소리 흘림 없기’에 문제없음을 ‘딱 한 병’으로 상향조종한 후
실험할 기회가 없었다.
나실인의 서약은 “이미 버린 몸 가꾸어 무엇?”이지만...
달 없는 밤에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정취도 없고 해서
그만 둔다.
{암, 그래야지.}
흩어져 사는 식구들 다 건강하다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