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16 황혼

 

 

「하루를 닫으면서 그냥 하루가 스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 저린 사랑을 주시고 넉넉히 하루를 익혀서 되돌려 주십니다.

-김소엽 '노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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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신지 그런 댓글을 달아놓으셨기에 얘긴데...

 

돌아보니 그런 하루, 알 들어차지 않은 콩깍지 같은 날들 아니었나 싶어 침울했는데...

또 돌아보니 그게 다 파먹고 나서 그렇지, 받을 때는 온전했고 그걸 다 누린 셈이다.

에도나메 빼먹고 남긴 껍질, 수북이 쌓인 탄피, 다 쓴 거야.

 

그러니 덧없다 할 것 없다.

그냥 좋았더라 하자.

내키면 “감사합니다” 그럴 것이고.

 

{이건 일기.

부친 편지는 되돌릴 수 없지만 일기는 지울 수 있잖니?

 

며칠 또 나가있을 텐데 찾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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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득한 황혼 속으로 몸을 던져도 다치지 않는다.

본래 없는 나를 나라고 우기던 내가 약해져서 나 같지 않게 되었으니

그만큼 가벼우면 바람에 의탁하고 유영할 수 있겠다.

 

적멸은 시공이 아닌데도 어둠으로 지워져가는 꽃구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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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어지지 않았으니 기다리지 않는다.

 

“돌아오라”는 말 우습지 않은가

머문 적이 없으니까 떠난 적도 없는데

뭘 기다리는지 정말 우습지 않은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로 화해하기.

그가 늦게야 도착해서 한 말이 아니고

내 집에서 자고 있는 그를 늦게 발견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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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슬픔이 아주 간 건 아니지만

그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고

슬퍼서 기운 없는 게 아니고

슬픔은 정화

슬픔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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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철과일이라도 그렇더라

덜 익지 않은 건 농익었더라.

 

무엇이라도 좋다고 그래야 해.

아무래도 괜찮다고 그래야 해.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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