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18 문경에서 2
박물관
석탄박물관? 뭐 그런 게 다 있니?
{태백, 보성에도 있다고 그러대.}
화석 연료 아니라면 원자력밖에 없는데... 왜 석탄을 캐지 않게 되었는지
그런 얘기 이제 와서 할 것 없다.
그게... 영화 보며 눈물 짜는 실없는 인간들도 있다지만
아 그 석탄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왜 짠하냔 말이지?
16년 진폐증 앓다 죽은 이의 폐가 유리병 속에 담겨있더라.
동바리-막장 무너지지 않게 고이는 버팀목-를 세우는 광부 모형을 보는데
마음 한 구석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이지만) 허물어지더라.
아틀라스, 그래 ‘Der Atlas’, 그리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으로.
갱내에서 쥐를 발견하면 마음이 탁 놓인다는 거지.
그래서 광부들은 더없이 좋은 친구인 쥐들과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더라.
가스 유출을 점검하는 신통한 기기가 없던 시절에
십자매를 날려 보냈는데 돌아오면 안심하고 들어갔다고 그러더라.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신발은 꼭 방 안쪽을 향하게 놓았다고.
부부싸움을 한 날은 일 안 나갔다고.
{길 박물관, 도자기전시관, 유교문화관 같은 것도 있는데 내가 뭐 관광안내원은 아니니까...}
막사발이 눈에 띠기에 얘긴데...
막사발은 막사발이다.
막사발이었던 만큼 막사발이다.
그렇게 막사발로 남을지는 모르겠다.
Interlude
단체손님 여러 팀 한꺼번에 받는다고 밥이 안 나와서 {흠, 한 시간 이십분 기다렸어}
밖에서 어슬렁거렸다.
틈나기에
가장 미안한 호칭인 ‘이름 모를 들풀’들에게 “얘들아, 너네도 사랑하지?”로 얘기 트다.
고백의 진실성은 목소리의 크기로 증명되지는 않으니까
백만 송이 장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알 큰 보석을 바칠 것도 아니고
광고풍선 띄울 것도 아니고
여린 소리면 어때
{못 알아듣는다면 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니.}
새들이 증인으로 서고 바람이 축가를 불러줄 것이다.
전달되느냐가 문제 아니고
나의 흔들리지 않음이 고백의 요체라고.
건드리고 밀어도 감동(to be touched, to be moved)되지 않는다면 그건 돌이야.
돌을 감동시킬 수는 없거든.
{깎거나(彫刻) 길들일 수는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뿌리 깊은 나무나 돌이어서가 아니고
미친 X 널뛰듯 하나 싶어도 제 자리 떠나지 않고
이내 일정함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야.
나침반의 바늘처럼 말이지.
그러니까 가녀린 풀이라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라고 흉볼 게 아니라
차라리 갈대이어라.
시달리다가 더러 꺾어지기도 하지만 끝까지 꼿꼿하던 걸, 떠나지 않던 걸.}
식사
제 철에 생산지에서 드는 것이라 ‘금값’이라 할 정도는 아니라도
안 먹어도 상관없고 바라지도 않는 것을... 죄송하다.
‘각계 인사’-민주 유공자 포함- 오천 명에게 봉황과 무궁화 문장과 함께 돌렸던 하사품은
주린 군인 삼천 명을 칠보산에 풀어 채취한 것이었다.
별맛도 아닌데 그저 귀한 것이라면...
들어가는 입이 귀한 것도 아니고.
신망애육원
문경에 아는 이는 아는 ‘시설’이 하나 있는데...
전후에 초등학교에는 ‘고아’들이 많았다.
‘고아원 아이’와 ‘고아원 집 아이’가 있었다.
고아원 집 아이였던 황영숙 원장은 부친 황용석 장로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다.
땅과 시설이 아니고 믿음과 채무-하나님과 이웃에 대한-를 유산으로 받았다.
30년 전에 흩어져 사는 팔남매를 불러 모으고 유산을 분배하겠다고 그러셔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응, 없이 살던 우리에게 꿍쳐둔 재산이...”로 기대하며 앉았다고.
유산은 42장의 메모지로 이루어진 말씀 카드 세트 하나씩.
삐뚤빼뚤 펜으로 쓴 첫 장은 “오늘은 틀림없이 좋은 날이다”
마지막 몇 장, 스캔이 깨끗하게 안 되어 아쉽지만...
그런 유산을 물려받은 따님의 ‘원장 인사 말씀’은 늘 그렇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으며
황무지 속에서도 길을 보는 가능성에 대한 신념입니다.
불리한 환경 속에서 가능성을 보는 믿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1954년에 13명의 아이들을 거두어 시작하여 53년이 지났고
지금은 미취학 아동 몇을 포함하여 72명이 가족-‘보육사’라는 말은 없다-들과 함께 산다.
그래도 큰 땅을 물려받아 이제는 실속 있는 재산가가 된 경우도 아니고
하천 부지 개간한 일만여 평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자립’ 운영한다.
삼백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고 10월 말에 출하하는 별난 복숭아-한 개 만원-도 생산한다.
대포의 위력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파괴력에 있다.
{비격진천뢰도 소리는 컸으리라? 아휴~ 그런 게 공성(攻城)의 변수였다니...}
사랑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가 아닐 것이다.
해서... 소개는 뭐... 예고편 없으니 당기는 분은 가서 보시게.
가을날이지만 갑자기 비 뿌릴 때도 있고
“없었던 일로 치자”는 설명도 없이 파란 하늘이 다시 다가온다.
해가 짧아 어느새 저물고
애육원 밖으로 보이는 벌판에 감사의 기운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