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19 뒷동산에서

 

{감잎도 아닌, 바스러질 떡갈나무 잎에 쓴 거라서...}


쪼가리 땅을 사유지라고 담을 쳐서 막아두어 뒷산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에게 원망 듣고

‘주인 XX 죽여라’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낙서도 있고 한데

“응, 웬일로 쪽문을 열어두고?” 싶어 기웃하다가 발을 디밀었다.

개가 달려들지 않나 싶어 긴장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땅이라 그런지 깨끗하고 조용하다.

꽃밭으로 만들었던 땅에는 배향초, 꿀풀 뿐만 아니고 쑥부쟁이조차 말라 버렸는데

어라, 술패랭이가 아직 남아있네?

{가을이 되어 핀 건 아니고 초여름에 핀 게 남았을 것이다.

“이제 봤으니 됐어”하고 눈감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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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 다니는 거지만

길에서 조금만 비켜서고

너럭바위나 그루터기 없으면

아무데나 털퍼덕 주저앉아도 좋다.

{겨울잠 자기 전에 독 오른 뱀들이 돌아다닌다고 해도}

누우면 모래 새듯 조금씩 허물어져 내린 하늘이 덮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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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일 없고 일부러 찾을 건 아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한 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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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공원에서 어딘가로 내려가면 청관(淸館)거리가 있었다.

“라이라이 꾸냥이 운다 목단꽃 옷소매에 고향 꿈이 그리워...”

이삼층 목조건물, 붉은색, 멀쩡한 표정으로 엉덩이 까고 볼일 보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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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이끌리는 걸음으로

수십 년 만에 처음 찾았던 한국 가을

보물도 몇 점 있다는 큰절인데 무너짐을 방치하고 있었다.

후회처럼 스며들던 밀물과 부서지는 햇빛이 은가루를 뿌려대던 해변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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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못할 것도 아니고

못 만날 이유도 없는데

보지 못해서 생긴 거리감이 Grand Canyon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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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편안하고

나는 지금 불편하다.

{지은 죄가 모자라서 하는 얘긴지...}


서툶을 나무라는 서툶으로

사랑은 가고 다시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죄다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한테만은 잔인하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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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청도에서 눈을 만난 적이 있어.

{반짝 눈꽃 폈다가 이내 사라졌지.}

이상기후랄까 때 아닌 심술 스쳐가듯 하는 날씨야 어쩌겠냐만

내 영혼의 봄날에 줄곧 눈 내릴 건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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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게.

가을 아닌가?

들어와 한참 앉았으니 이조차 떠날 손님인데

‘가을맞이’라니?  이제 그만하게.


가야 할 사람 붙잡는 손 있는지

둘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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