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맞이 20
오는 이 섭섭히 맞고 가는 이 반긴다지만
아직도 ‘가을맞이’라고 부르기가 그러니 이제 그만 접기로.
{가을은 본래 없는 것, ‘중간 시대’, 모호한 경계 같은 것인데
잡을 데도 없는 것을 어쩜 그리 오래 안을 수 있었는지?}
采采卷耳 不盈頃筐 嗟我懷人 寘彼周行
-‘卷耳’ (부분), 詩經에서-
끊을 것도 없고
던질 것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되리라.
가고 싶고 보고 싶어도 워낙 먼 데 있어서라는 말 하지 말라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게지 무슨 멀고 가까움이 있겠냐고 그러시더라.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論語, 子罕篇에서-
깨끗하게 보내고 흉하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모시는...
{오 그게 무슨 속임수가 아니고 알만한 이들 아는 얘긴데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도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도 다 헛소리인 것을.}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드는 배여
-장석남, ‘배를 밀며’-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함민복, '그리움')?
그건 좀 과한 표현이네만.
어제 공항에 내리니 비가 쏟아지더라.
여행 중엔 날이 괜찮았어.
사랑이 아무렴 죄겠어
그래도 약점이긴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억울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없이 욕먹고도
잘못했다고 그러는 건 너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상처받고
사랑한다면서 이길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그 지는 게임 끌고 가더라고.
빨리 끝나지도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