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갈까

 

안경 쓰고도 잘 보이지를 않아서

‘숨’은 ‘舍’로 ‘숲’은 ‘金’으로 읽히고

 

‘강 볼까’를 ‘걍 볼까’로 읽고서는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지만

-그게 찾아가 정물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서

저쪽에서도 만남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 거니까 ‘그냥’은 아니지만-

“‘걍’이 뭐냐 걍이? 나이 그만한 시인이... 쩝~” 하고 나니까

‘강’이다. 강 몰라? 강 말야.

 

     포플러 나무들이 거꾸로 서 있는

     강으로 가, 저문 햇빛 받으며

     우리 강 볼까, 강 보며 웃을까

     이렇게 연민들이 사무치게 번쩍이는 날은

 

      -최하림,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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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비늘 반짝인다고 웃는 건 아니지만

울음이 타는 강? 그런 과한 언어폭력은 삼가기로.

 

그래도 한때 타기는 한다.

{붉게 물들었다고 핏빛이라고 할 건 없겠지.  다 너무 지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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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한강을 보는 건만 해도 고맙지만...

한참 안 가본 Muskoka River, Ottawa River, Oxtongue Rapids,

Shenandoah & Potomac, Smoky Mountain 골짜기마다 흐르는 여울들...

잘들 있을까?

옛 이름 그대로 부르듯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겠지.

그래도 거기 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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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koka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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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nandoah 강과  Potomac 강이 합류하는 데쯤이다.

 

강 갈까?

더 늦기 전에

{아무리 늦어도 아주 늦은 때는 없다지만}

북한강에라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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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두 컷은 뭐 ‘River runs through it’에서 가져온... 다 아는 얘기

 

  

요즘 들어 갑자기 박정만이 광장의 가랑잎처럼 떠돌아다니기에 하나 주웠다.

 

     내가 하나의 갈대라면

     그대는 다만 바람이어야 했다.

     흔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람이 바람을 몰고 오는

     바람의 속,

     그대는 나의 바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내가 강가에 피어난

     한 포기의 여린 풀로 있을 때

     그대는 거대한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끝없는 강풍이어야 했다,

     바람도 없고

     바람이 흔드는 소리도 없는

     이 미친 돌개바람의 속,

     그대는 무풍의 바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내가 이름 없는 별이 되어

     한줄기 어둠으로 화하고 있을 때

     흔들리며 바로잡는 조그마한 죄,

     그대는 나의 형벌

     영원한 나의 바람이어야 했다

 

       -박정만, ‘사랑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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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하긴 뭘... 그렇다는 거지.

다들 아프다고 하는구나.

아파도 억울하다 말 못하고

그 짐 그냥 지고 가는구나.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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