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남정네가 돌아왔으니 바깥일 할 게 많지만
포도에 떨어진 도토리를 밟아 미끄러지는 바람에 시원찮은 발목이 다시 삐끗
해서 방안에서 빈둥거렸다.
병든 닭이 그렇겠다.
시차 적응도 안 돼서 그렇다고 봐주면 되겠고.
경허(鏡虛) 스님의 선시를 이런 데 갖다 붙여서 죄송하지만...
低頭常睡眠 고개 꺾고 늘 졸기나 하니
睡外更無事 조는 것 말고 할 일 없구나
睡外更無事 조는 것 말고 할 일 없으니
低頭常睡眠 고개 꺾고 늘 졸기나 하네
기온도 쾌적하고 하늘도 청명하지만
고운 가을 모습은 없다.
그래도 장미가 피고 나팔꽃도 아직 남았으니까...
삼년 전에 한 자 정도나 될까 그런 오동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많이 컸다.
같은 날 그만그만한 놈들을 심었는데 자라는 속도가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야 학교에 같이 다녔어도 배움이 같지 않으니까.
색깔 달라진 잎이라고는 배롱나무 정도, 꽃배나무는 이제 물들기 시작했다.
먹지도 못하는 도토리 쓸고 나니 한 가마가 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에고 발목 아파라...}
내 것 아니라도 돌아오면 머물 데는 있다고 사진으로 등록해둔다.
또 가야하네.
못질 한번 안 하고 웃자란 가지 하나 치지 않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
{고운 노랑은 아니지만} 가랑잎 날려 집 나가는 이의 발길을 막네?
鷄鳴問前路 黃葉向人飛
-권필(權韠)의 ‘途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