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누가 날 기다리는가?

“Veni, vidi, vici(왔네 보았네 이겼네)”라는 귀환도 아니고

배웅과 마중씩이나 기대할 건 아니지만

“이제 나 왔어”라는 전화 받아줄 사람 있으면 좋겠다.

{반대편과는 15시간 차이가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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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집으로인데

온 건지 간 건지?

이제 어디로?


여기는 어딘지, 여기가 거긴가?

거기는 어딘지, 더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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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9월, 서울특별시 안에도 이런 데가 있었다.


 

그땐 여행하자면 시골 지서에 기류계(寄留屆)라는 걸 제출해야 했다.

‘반공방일(反共防日)’이 국시일 때니까 낯선 길손은 간첩 신고로 욕볼 때가 많았거든.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인 이세조차 기류민으로 분류한다는데

그게 뭐 그리 기분 나쁜 말도 아니네?

다들 나그네이고 어디 있든지 잠시 그 땅에 몸 붙여 사는 건데 뭘.

한군데 오래 산다고 해도 정처 없기는 매일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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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hin? 

 


열흘 만에 돌아왔는데 달려있는 은행잎이 없다.

그새?

메타모르포시스가 늘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데.

하긴 전환기니까.

끌고나갈 수 없을 때는 혁명과 단절이 도입되기도 하니까.


떨어져 바스러졌다고 아주 슬퍼할 건 아니다.

노랑은 갈 때 “See you later.” 그러거든.

노랑 아니라도 더 넉넉한 얼굴로 찾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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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그랬다.

그 나무는 거기 그대로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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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11월 동숭동 중앙도서관 옆


 

그때 “소년은 쉬이 늙나 학문 이루기는 어려우니”라는 말 들으며 피식거렸더랬지.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草春夢   階前梧葉已秋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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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6월  아래는 학비를 대던 앙골라 사육장, 북청 물장수는 아니지만...

 


“그리워라”라는 말

되돌릴 수 없고 돌아갈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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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월

 


김승옥 선배가 ‘서울 1964년 겨울’이라고 그런 때에

우리는 제복을 벗고 날 준비를 했다.

철학하자고 그러던 소년들은 철학 교수, 수학 교수가 되었고

하나는 ‘-가’도 아니고 ‘-자’도 아니고 ‘-인’도 아닌, ‘그냥 사람’으로 남았다.

하긴 뭐 철학이란 ‘철학하기(philosophieren)’이니까...

이제야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 때가 된 거니까.


비워뒀던 방 으슬으슬한데다  잠은 안 오지

바랜 사진 몇 장 굴러 나와 그렇지

국화차라도 마시고 몸 풀리면 지나가버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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