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말 2
1
It never rains but pours.
없을 때는 한참 없지만 있을 때는 몰리기도 한다.
양식으로만 산 적도 있지만 밥을 김치 없이 먹기는 좀 그렇다.
추석께 ‘X가집 김치’ 한 봉지 산 게 떨어져서 한 열흘 발효식품 없이 지내다가
“반찬이 아니라 약인데...” 하고서 막김치 조금 사왔다.
{포기김치가 보기 좋아 가리켰더니 “그건 비싸요”하며 ‘사지도 않을 걸...’로 나오는 바람에...}
다음날 점심 사먹는 집에서 김치가 맛있다고 했더니 커피 병 분량만큼 담아주기에
이천 원을 주고 들고 왔다.
{벤또 국물 때문에 책가방에서 늘 냄새나던 때가 있었지. 흠, 지하철에서 좀 낭패였다만...}
다음날 친구 내외가 지나가다가 김장했다고 한 포기 떨어트리고 갔다.
2
처음에는 여행 끝에 따라오는 시차적응의 문제로 여겼다.
그게 영 사라지질 않네?
저녁술 놓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눈꺼풀의 무거움으로 꾸벅.
그렇게 무너지기를 거듭하면서 이겨내리라, “We shall overcome”까지 부르고 그랬지만...
초저녁 선잠 끝에 골치 아파 깨어나서 날밤 모드로 진입하는 게 생체리듬으로 고착 단계.
흠... 그게 방어기제리라.
초저녁의 어수선함과 호들갑, 갑자기 가신 뒤의 황당한 적요(寂寥)
그런 걸 힘겹게 대응하느니 차라리 자는 게 났더라는.
다들 잘 때 일어나 달밤에 체조하든 빠진 이빨로 꼰주리 두든 남이야...
As 'wonderful' is 'full of wonder',
'Tearful' means 'full of tears.'
3
토요일에 모처럼 나갈 일이 생겨서...
나는 그의 말하자면 ‘mentor’이었다.
요령부득, 시작하면 어떻게 맺을 줄 몰라서 끝없이 계속되는 이야기, 충청도 사투리...
그래서 그는 나의 핀잔과 꾸중만 들었다.
이제 그는 나의 존경과 흠모를 받기에 합당한 어른이 되었다.
십이 년 동안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7,000 가구를 방문하였는데
어느 집에서는 “3년 전엔가 너 비슷한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유치원을 25개 지었고, 청소년 축구 팀 28개를 세워 연중 리그를 운영한다고.
여러 곳에 교회, 신학교를 세웠고, 레소토,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에도 진출했다.
별다른 후원조직도 없고 무슨 선교회 같은 데에 속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 광대한 ‘영토’를 관리하는지 실로 놀랍다.
“쓸 계획만 가지고 살면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더라고요.”가 그의 말이다.
말솜씨는 아직도 그렇고 “~개벼”로 끝나는 사투리도 여전하고.
천국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니까.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주먹을 올리며 “For the Kingdom!” 이라고 외쳤다.
Seoul Youth Hostel, 찾아가기도 힘든 데 갔다가
남산 한옥 마을, 명동, 인사동, 교보문고... 그렇게 돌만 한데
뭐 좋다고, 뭐 기다리는 게 있다고 서둘러 돌아왔다.
O값이 X값이 된 김치로 찌개 해먹고 또 한숨... 일어나 앉았는데
귀한 시간이니 어영부영 보낼 것이 아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