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1
잎이 달려있지 않다고 죽은 나무는 아닐 것이다.
죽은 나무도 있겠지만 거리에 죽은 나무를 방치하지는 않을 테니까
동네에 있는 벗은 나무(裸木)는 겨울나무일 것이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그건 회상.
움돋고 꽃피는 봄을 기다리면서? 그건 기대.
고개 숙이고 발돋움하다니...
하나 같이 벗은 나무들이네.
그래도 죽은 게 아니라니까.
건장한 남정네들은 어디로 가고 아낙, 노인, 애들만 있네.
전쟁 통에 다 죽었는가?
늙어 노인 되었고 자라 어른 될 테니 거기 있는 거네.
아 저 나무들이 다 남자라네.
수면에서 솟은 잠망경 같은 남자라네.
{그렇게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빈 광주리에
저녁노을
담아 이고
쓸쓸히 돌아온다
동구밖
고목에
까악까악
저녁 까치가
짖는다
-호소향, ‘노을 - 박수근에게’ (부분)-
2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유하}이라 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너무 머니까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리움이겠네.
‘못~’인지 ‘안~’인지 썰물 때 같이 빠져나가지를 않더니
것 봐, 말라버린 등에 쏟아지는 햇볕으로 죽을 지경이 되었구나.
밀물 때까지 살아남을까...
행여 몸 축이고 나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가도 못 볼 것이고 기다려도 안 올 것이니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달 하나 가슴에 묻고 가는 시냇물처럼’(이성선)이라고도 했다.
그렇지, 그렇게 그림자 안고 떠나는 것이다.
{달도 물도 움직이니까 떠남이야 어쩌겠는가.}
갈라섬은 아닐 것이다.
속속들이 배었으니까.
그야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는 아니니까
그때 그 마음 같기야 하겠는가
또 많이 늙기도 했다마는
줄 없는 비파로라도 소리를 낼 수 있어
만나기만 한다면 다시 노래할 것이다.
3
“뭘 더 바라겠는가 보기만 하면 됐지” 그러려는데
그러자면 만나기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김경준 군이 그러더라.
한국에는 왜 ‘plea bargain’이 없냐고.}
무기징역에서 감형되어-모범 수감생활이 인정되어-
일찍 출소한다고 해도
격리의 세월이 너무 길어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나가서도 무의탁 독거노인 쪽방살이일 텐데
자유 없으나 먹여주는 데 그냥 있게.
4
꽃밭이라 꽃이 있는 게 아니고
꽃 피는 데를 꽃밭이라 그런다.
어디서 피면 꽃 아닌가
네가 꽃이니
꽃 없다 하지 말게.
충매(蟲媒)화, 풍매(風媒)화,... 또?
단성생식(單性生殖).
벌 나비 오지 않아도 새들어오는 바람조차 없어도
열매 달리고 씨 맺을 수 있거든.
볕들지 않는 베란다 돌보는 손 없어도
필 거라면 핀다.
가기 전에 한번 핀다.
그렇게 쏟아내기 전에는 졸리더라도 참아야지.
{거봐, 저기 꽃대 하나 올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