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균이 돌에 다녀오다가

 

1

 

어느 집 돌잔치에 와서 축복해달라고 해서 가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나를 맞은 할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00 송씨 00파 00대 종손 옳을 시(是), 고를 균(均), 송시균입니다.” 라고 일러주며

특별히 “‘시(是)’는 ‘곧다, straight’라는 뜻이기도 합니다.”라고 부연했다.

하하, 증조부가 고법 판사이셨는데, 대쪽 집안일세그려.

 

“복 있는 사람은...”(시편 1편)이나 마태복음 5장 ‘팔복’에서 ‘복'을 가리키는 헬라어

‘makairos’가 본래 ‘곧다, 옳다’라는 뜻이라고 했더니 가족들이 좋아했다.

 

‘是’는 종적, 수직적인 관계, 사람과 하늘, 한울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하겠다.

‘均’은 횡적, 수평적 관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가 그래야 할 것이다.

윤리(倫理)는 바른 관계의 도리로서 충효, 지조와 선린, 관대/융통을 근간으로 한다.

 

2

 

그분이 덕망 있는 지도자라 그렇게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리라.

그저 ‘갈비’가 아니기를 빌 뿐이다.

 

잘 만들지 못한 연은 뱅뱅 돌기만 하지 뜨지 않는다.

새도 두 날개로 날지 않는가?

 

그동안 좌편향했다고 해서 과도한 우향우를 하더라도 나아가지 못함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무슨 자동항법장치인가 하는 것에 맡기면 어떨까.

 

어떤 좌절한 후보자는 ‘천민자본주의’ 운운하며 분노했지만...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야 어쩌겠는가?

다만 잘 살기 위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비리 불법 부도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선량한 백성이 살기에는 너무 험한 나라이리라.

 

3

 

출근길에 여의도의 코스콤 비정규직 근로자 농성 현장을 지나게 된다.

시가전에 대비한 비정규군 병영 같은 곳에서 아침마다 점호하듯 모이고

때로는 무슨 검도 훈련을 하듯 막대기를 들고 집단 체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꼭 저래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울지 않으면 떡도 없을 것이고

울어도 돌아오는 게 없으면 물어서라도 얻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흘낏거리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삭발하는 여성 근로자의 모습에 눈이 가고는 내내 편안치 않다.

{그럴 때 “맴이 쪼개 껄쩍한디...” 그러던가?}

 

떼쓰는 사람 편들자는 얘기가 아니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남의 형편도 이해하자는.

 

성탄, 연말, 한겨울인데

얻은 것 없고 이기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동료의 시선이 창살이 되어

옥외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

불법체류 약점 때문에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혹사당하는 이주노동자.

무너진 가정, 위로를 나눌 가족이 남이 된 이들.

 

가난한 나그네의 복중에 있는 아기로 오신 분을

어찌 여관 주인이 알아볼 수 있었으랴.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지만

오늘은 그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겹쳐진 그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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