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2

 

 

“이룬 것도 없는데 한 해가 간다”, 그런 것에 대한 自愧와 悚懼함이 연말 정서에 포함되겠지.

뭘 이루려고 했는데?

민달팽이 궤적 보며 한숨질 게 아니고

살아남았음을 고마워해야지.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하는 관계를 누렸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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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水體인지 멋들어지긴 하다만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으니 나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당대 명필이었던 蒼巖 李三晩 선생, 본명은 奎煥이었다던가 知天命이 지나 改名한 이유?

학문, 出仕, 文集, 아니 娶妻이던가, 그 세 가지가 늦었구나! 해서 ‘三晩’이라 했다네.

그분이 그러셨다면, 나는 ‘三缺’이라 해야 할 것이다.

도무지 뜻이 없었으니, 애썼으나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어서 후회나 억울함이 없다.

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저서와 제자와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는 悔恨?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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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光水色’으로 읽히는지?



나온 얘기 싹둑 자르기도 그래서 끌고 가는데...

秋史(1786-1856)가 귀양길에 글씨 좀 쓴다는 蒼巖(1770-1847)을 일부러 찾아가서는 도발했다.

“30년 붓을 잡았다면서 획 하나 제대로 못 긋누나!”(操筆三十年에 不知字劃일세, 쯧)

蒼巖의 제자들이 분을 못 참고 패려고 했지만 어른이 말렸다나.

추사가 大興寺로 가서는 員嶠 李匡師가 쓴 현판이 영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알 만한 사람이 저런 걸 걸어놓다니 어서 떼어 내리게.”

草衣禪師를 윽박질러 기어이 떼어내고는 제가 쓴 걸로 대체했다대.

그러고 제주도로 가서 칠년 넘도록 유배생활을 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먼저 대흥사에 들러 “그 원교의 글씨 다시 걸지.” 했고

창암을 찾아갔는데 아, 이미 가셨네.

생전에 사과를 하지는 못했지만, 碑文을 추사가 썼다.

名筆 蒼巖完山李公三晩之墓

公筆法冠我東 老益神化 名播中國 弟子數十人 日常侍習 亦多薦名于世 取季弟子爲后

{공의 글씨는 우리나라 으뜸으로서 노경에 이르러 날로 신묘해져서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지다.

제자 수십 명이 늘 모시고 글씨를 익혀 세상에 이름을 날린 자 또한 많았다.

막내 동생의 아들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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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참회 같은 것은 아니었을 거라, 그래도 겸손해지고

“그렇구나, 촌스럽다 했는데 그게 아주 괜찮은 거네. 大巧若拙이 그런 뜻이겠네.”라는 깨달음도?

삭은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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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민은 ‘홍어’라는 시로 주절주절.


말이 좋아 삭힌 거고 숙성이지 결국은 조금 상한 것 아니겠는가

시들어 꽃답고 늙어 사람답고 막다른 골목이 길답고

깨어 헛것일 때 꿈답던 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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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푹 삭았는가?

{썩었지 뭐. ‘부패의 힘’이라고 해둘까?}

어린 시절-“어린 백성이...” 할 때의 ‘어린’- 무차별 포격으로 괴롭혔던 同門修學의 벗들

이제 찾아가 사과하지 않아도 되겠다.

대개 성공했다.

{대개 성공하고 썩었다.}


썩지 않았다 치고

그래도 먼지 같고 티끌 같은 존재.

그래서 虛無? 아니고


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머금고

一念卽時無量劫   찰나의 한 생각이 영겁일진저...

(義湘祖師의 ‘法性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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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도 짧아도 커도 작아도

아무 것도 아니라 할 수 없고, 아 뭐 대단해서가 아니고

그건 그거, 나름대로 한 삶.

김태호가 말한 뭐가 아니고, 아 참 꽃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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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괴로웠다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Gam zeh ya'a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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