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
손두부와 족발을 사들고 와서
물맛 떨어지는 얼굴을 앞에 두고 “To Vincent!”라고 그랬다.
물은 물이외다.
하지만 물도 물 나름인데
날이라고 다 같은 날은 아니어서
오늘 저녁은 약간의 상향조정(upgrade)을 묵인하기로.
작은 별들이 억수로 빠진 은하수를 마신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마 24:24)는 말씀이 있었다만
따로 골라낼 게 있나, 그런 것들이 모여 발효되었거늘.
겉도는 게 있거든
고명으로 띄운 거라 여기게.
큰 별 있어 작은 별이라 그랬겠지만
작은 별 없으면 큰 별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큰 별 위하여 작은 별이 있는 게 아니고
작은 별은 작은지도 모르고 생겼고
작으면 작은 대로 제멋에 겨워 거기 있다.
저마다 저 때문에 살고
존재이유는 존재자체이다.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말조차 얼마나 악용되었는가?
{이쯤 해놓고 잠이 들었더랬다.
수저 놓기 무섭게 자빠지다간 올챙이배 되겠네...
골치 아파 일어나 보니 꽤 오래 잤나봐.
두통약 없는 걸 보니 그동안 아프지 않았던가, 감사하다.
걷자고 나오긴 했는데 별로...
별이 없다.
서울에서야 개었다고 별을 보겠는가마는.
눈 올 거라 하던데...
그냥 들어왔다.}
그랬던가, “작은 별에 고독의 잔을 마신다” 라고? 말도 안 돼.
그래도 시는 논리가 아니니까.
사랑은 시도 아니지만
사랑도 논리는 아니니까.
그러므로 별이 뜨는 가슴이란
떠오르는 별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잘 지워버린 세계이다
떠오르는 별을 별이라 부르면서
잘 반짝이게 닦는 마음, 이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마음일수록 별을 닦고 또 닦아
그 닦는 일과 검정으로 까맣게 된 가슴이다
그러므로 그 가슴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광채를 가진 사람이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남을 반짝이게 하는 가슴이다
-오규원, ‘작은 별에 고독의 잔을 마신다’ (부분)-
시가 논리가 아니라고 해서
논리가 아닌 게 시가 될 수는 없다.
‘무의미의 시’라고 해서 ‘nonsense’나 ‘meaninglessness’라는 말이 아니고
배열을 미룬, 그러니까 조합과 어순을 독자에게 맡긴 시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시는 시시하다.
작은 별.
{큰 별도 있지만 그게 그거니까 그냥 별들, 아니 그래도 작은 별들이 좋겠다.}
너희들을 엮어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 페가수스, 거문고, 큰곰... 해도 난 모르겠고
아무래도 내가 만들어야 할까보다.
그게...
저마다 별자리를 따로 만들면 혼란스러우니까
게임에도 규칙이 있고 도로교통법을 지켜야 나다닐 수 있으니까
결국 남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숙지하는 수밖에 없겠네.
두 개의 작은 별은 미움과 사랑
세 개가 되면 삼각관계
여럿이 되면 무관심, 더러는 충돌
다스리자면 권력이 발생하고 지배와 종속...
그렇다고 따로 떨어져 나올 수는 없으니까.
{늘 아픈 아우가 생각난다.
우리는 대면하기 전에 ‘Mysterium Tremundum et Fascinans’을 얘기했더랬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데... 일어나게, 좋은 날 있어야지.
삶은 논리가 아니라 신비이니까, 억울할 건 없지만... 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