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2

 

1

 

밤새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진 것이 어디 만유인력 때문이겠냐고?

고갯마루에서 다리쉼할 때 흐르던 땀이 저 혼자 어디로 가버린 건가?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서 남보다 더 떨게 된 게 왜 그렇겠냐고?

 

보지 못해도 있기는 있는 거야.

오기는 왔는지, 인사도 없이 가버렸는지 그저 그런 줄 알고 서운할 것 없다.

바람은 그런 거야.

 

잡아달라며 요리조리 꼬리를 흔들어 피하는 교태가 얄밉다고?

바람은 그런 거야.

 

머물 수 없는 걸 붙잡을 게 아니니까

“바람인가 보다”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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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가소성(可塑性)이라는 것은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누르면 눌린 대로 있게 된다는 뜻이니까

점토에겐 의지가 없고 도공(陶工)이 원하는 대로 빚어질 뿐이다.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뭐라 할 것은 아니다.

 

내게 일어난 것(what had happened to me)이라는 원자재에다가

내가 행한 것(what I have done)이 조금 보태져서

나의 삶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의 나됨은 나 아니어도 되는 나와 나만인 나가 합해져서

나이어야 하는 나로 되었다.

그렇다고 다 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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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있어도 쓸데없으면 들고 온 게 짐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룰 길이 없다고 강도짓 하겠는가?

욕망을 줄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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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몰라서 끌렸지 알고서는 좋아할 수 없다고?

 

모를 때 사랑을 시작하지만 사랑해서 알게 된다.

알고도 사랑해서 더 알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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