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폭설주의보가 내렸었는데
중부지방 이상 없음, 그리고 충청/ 호남 지역이 눈 폭탄을 맞았다더라.
기상대의 굴욕? 냅둬, 그만하면 됐다. 그럴 수 있는 거야.
아침에 눈꽃이 흩날리는 것 같더니만 흔적도 없네?
제야에 눈 내릴까?
{나야 뭐 상관없어,
기대하지 않지만, 오면 좋고.
눈이야 무심하지만
중생(衆生)은 유정(有情)이니,
내리기라도 한다면
또 난리날 것이구먼.}
김광균의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그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모양이더라.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雪夜)’, 1938년 1월 8일 동아일보-
김용택은 ‘내게 당신은 첫눈 같은 이’라 했다.
당신 하나로 밤이 깊어지고 해가 떴습니다.
피로와 일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놓아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기도, 명상까지도 당신은 점령군이 되어버리셨습니다.
내게,
아, 내게
첫눈 같은 당신.
몇 년 전 동문 홈페이지에 실린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연하장에
동영상으로 첨부한 눈 내리는 풍경이 정겨워 보여 덧글을 붙였더랬다.
서설(瑞雪)로 축복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구나.
숨겨도 이내 들통날 것이니
눈 덮였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지만,
잠시라도 시름 가리도록
펑펑 쏟아져서 소록소록 쌓이거라.
(... ...)
새해에는
사랑하지 못할 사람들이 줄어들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고,
마음결에 찍힌 흉터들이 흐릿해지고,
가난이 부끄러울 건 없지만
쪼들리지는 말고,
망가진 건강 때문에 한숨짓지 말고,
약한 이들 도울 수 있는 힘은
좀 남겨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납전삼백(臘前三白)이면 풍년이라던데,
허허허허
저렇게 뿌려주시니,
만사형통(萬事亨通)은 불문가지(不問可知)렷다.
따로 ‘이웃’을 정하지도 않았지만
찾아오는 이들 더러 있고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내 알지, 다녀간 줄.
그냥 “귀댁-예전엔 ‘高堂’이라 했다-의 만복을 비나이다” 하기는 재미없어서
연하 인사랍시고 주절주절하다보니 길어졌어요.
이런 시간엔 더 가깝고 덜 가깝고가 없어서
승전 소식이 전해진 날 거리로 쏟아진 사람들이 아무하고나 부둥켜안듯
그렇게 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