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소회(所懷)

 

1

 

동지 지나 겨우 열흘에 낮이 길어졌다기에는 좀 그렇지만

“노루꼬리만큼”이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흉잡힐 정도의 과장은 아니리라.

출퇴근길에 원효대교를 건널 때 박명(薄明)을 보면 알거든,

같은 시각인데 수색(水色)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회청, 은빛, 금빛, 핏빛, 거기에 있는지는 알아도 보이지는 않는 컴컴함.

 

그믐이라 달이 안 보인다고 걱정하는 이 없다.

차면 기울고 이울었다가도 피어오르니까.

여자와 어부라면 달의 주기에 더 민감하겠지만

누구는 모를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잖아.

운세(運勢)가 주기적(週期的)이라면

그것은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고

겸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 붙어있기만 하면 좋은 끗발 잡을 확률은 비슷한데

장땡 잡고 광땡에 밟히면 한동안 일어나기 어렵겠네.

흔하지는 않지만 그런 일이 없지도 않으니까

어쩌겠나... 운명의 맹목에 눈물짓지 말고 기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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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모두 편법과 불법은 이제 더 이상 시도하지도 말고 용인하지도 말자”라고 그랬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라 듣는 기분은 좀 그렇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니 “옳소!”하고 지켜보자.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꼭 꼬집어야 하냐?”라고 하면 달리 할 말 없다.

하지만... 용서하되 망각하지 말아야 하거든.

그래야 역사가 교훈이 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되니까.

 

누가 보낸 연하 안부에 그런 구절이 끼어있었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세계적인 걸작(특히 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죄성과 정의의 개념이 결핍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한(恨)은 넘쳐나지만 죄책(罪責)은 없는,

회개하지 않는, 그러니까 회(悔)는 있지만 개(改)가 따르지 않는 문화에서는

자드락나면 유감을 표현한 후에도 같은 비리를 반복 자행함이 생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삼십여 년 떠나 살다가 고국에 돌아와서 그 생기와 활력에 놀라고 기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법을 불법, 탈법, 편법의 징검다리처럼 이용하는 부조리의 만연과

개인적으로는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데서 선진화를 시작하자.”

“아멘!”하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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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떡심 풀어진 게 ‘고깃국’을 못 먹어서는 아니지만...

설상을 ‘소(素) 떡국’과 춘향이 반찬으로 때우고는 ‘동물성’을 취하고자 사골을 사왔다.

{‘동물성’이라는 말 옛적에 스무고개나 “여우야 여우야 나와 놀자”를 해본 사람들은 알지.}

불에 올려놓았지만 그게 금방 되나 대파까지 숭숭 썰어놓고는

방에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 얼마를 지났는지, 이게 무슨... 자욱한 연기와 살 타는 냄새.

팬 틀고 문 열어놓고 난리블루스를 치고

먼저는 억울한 기분-앗, 내 고기 어디 갔어?-,

치매성 건망증, 주의력 없음?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으니까... 비관할 것도 아니다.

 

다음날 점심에 찜닭 먹으러 갔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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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은 무너질 리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공들이라는 얘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지만

돌 던지다보면 호수도 메워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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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백사장과 우리 백성 마음밭이 다시...

 

 

새벽에 강남 가서 떠들 일이 있어서

뭘 주절댔냐 하면...

 

-가버린 사랑은 기념비이지 사랑은 아니니까

자나가다가 눈에 띄거든 묵념 한번 하면 될 것이고

그때 그 사람이 혹 돌아오거든

전설, 회상, 선입견, 보상기대, 기득권, 한풀이 없이

‘새사람’ 맞으렴.

 

-제목이 ‘새 출발’이었는데, 그렇다고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의 끝부분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는 말도 하는 모양인데, 시작은 ‘다시’ 하는 게 아니다.

언제나 처음처럼? ‘~처럼’이 아니고 처음이라니까. 숫.

출발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출발은 새 출발이다. {그렇기에 ‘새’ 자를 달 필요도 없지만.}

 

- Gregory Baum 선생님이 그러셨지.

“That God is alive means that tomorrow will be different from today.”

보태자면, ~that this year is different from the last year.

그런 말은 누가 못하냐고? 그럼 왜 안했어?

 

-미국의 새해는 풋볼로 시작한다.

간밤의 야단스러운 파티로 곯아떨어진 사람들이 늦잠에서 깨어나면 방송국마다 방영하는

Rose Bowl, Sugar Bowl, Cotton Bowl, Fiesta Bowl을 시청한다.

1929년 설날 바로 Rose Bowl에서 있었던 진기록 하나-

UCLA의 Roy Riegels라는 선수가 상대팀이 펌블한 공을 잡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저희 골대를 향해서 달렸다니까. 제 편 선수의 태클에 의해서 저지될 때까지

무려 65 야드를 전진(?)했다. 바로 제 편으로의 touchdown을 1 야드를 남겨두고.

Riegels 선수는 오만 관중의 우레 같은 야유와 자괴감으로 후반 출전을 거부했는데

Nib Price 코치는 그를 달랬다.

“로이, 겨우 절반이 지나지 않았느냐? 후반전에 너는 더 잘 싸울 것이다.”

코치의 말대로 리겔즈 선수는 후반전에서 선수생활 중에서 가장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벌써 반은 지나갔지만 아직 후반전이 남아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제 남은 세월뿐이다.

You can do better at the second half, even at the last quarter.

 

-“내 인생 왜 자꾸 꼬이지?” 그러면

꼬이고 풀리지 않는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투자가치의 발생시점은 지금, 오늘이다.

우하하핫, 대박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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